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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산책 산주안 거리

나의 바르셀로나

by 마케터 아델

걷기 좋은 도시

스페인은 포장되지 않은 시골길을 제외하고는 작은 동네까지도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잘 만들어져 있다. 좁은 구시가지 골목에 연석으로 나눠진 인도가 없어도 사람이 다니는 길과 차가 다니는 길 사이에 다른 구조물로 명확히 구분 지어놓았다.


바르셀로나의 에익샴플라 지구는 가로, 세로가 직선으로 곧게 뻗은 거리, 차도만큼 혹은 그보다도 넓은 인도와 햇빛을 적당히 가려주는 가로수 덕분에 더욱 걷기 좋다.


서울의 6분의 1 정도 되는 바르셀로나는 관광지나 주요 시설들이 거의 모여있어 웬만하면 걸어서 20~30분 안에 목적지에 닿을 수 있다.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지만 대부분이 일방통행이라 접근석이 떨어져 걷는 시간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걷게 만드는 도시인 듯하다.


급하게 출근할 때나 아주 먼 거리를 가지 않는 한 항상 걸었고 한 번 외출하면 만보를 걷는 건 기본이었다. 광장 까기 걸어가서 친구를 만나고 식사를 하고 걸으며 얘기하고 집까지 걸어서 돌아왔다.


바르셀로나에 살면 걸을 일이 많아 운동화와 낮은 신발들만 신게 된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동안 한국에서 신었던 힐들은 박스에서 나올 일이 없었다.




산책


주말 아침, 관광객이 닿지 않는 현지인들 만의 바르셀로나는 고요하다. 관광지가 없는 동네에서는 도로를 달리는 차도 거의 없고 가끔 보이는 사람들은 더욱 천천히 걷는다. 이런 주말 아침에 하는 산책은 하루를 완벽하게 시작하는 방법이다.


에익샴플라지구 오른편 에익샴플라 드레따 Eixample Dreta에 있는 우리 집은 북적이는 관광지인 그라시아 거리와 두 블록 정도로 가까우면서도 현지인들이 대부분 살고 있는 곳이라 주말의 여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집에서 나와 산주안 거리를 따라 개선문 방향으로 걷는다. 내려가는 길이라 더욱 걷기 편하다. 가벼운 운동삼아 걸으면서 상쾌한 공기도 마시고 기분 좋은 햇빛도 받으면 잠들어있던 몸이 조금씩 깨어난다. 스포티파이, 팟캐스트, 혹은 스페인 뉴스를 들으며 걷다 보면 개선문까지 20분이 걸린다.


개선문이 보이는 카페테라스에 앉아 2.2유로짜리 꼬르따도를 한 잔 마시거나 그 옆 아시안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돌아오면 한 시간이 조금 넘는다. 우리 집 - 산주안 거리 - 개선문은 주말 아침 시간이 될 때마다 했던 나의 최애 산책 코스였다.





바르셀로나에서 길 건너기

주말 아침 산주안 거리 주변은 다니는 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면서 방해 없이 쭉 걸을 수 있다.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도로 간의 간격이 좁은 곳에서는 차만 오지 않는다면 신호 관계없이 길을 건넌다. 하지만 신호에 맞게 달려오는 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사람을 위해 차를 세우거나 속력을 줄이지 않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때에는 오는 차가 없어도 불안한 마음에 신호를 지켰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신호는 거의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만 보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산주안 거리

그라시아 지구에서 개선문까지 길게 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산주안 거리는 현지인들을 위한 카페, 바, 레스토랑들이 이어져있다. 브런치 레스토랑 같이 비교적 새롭게 문을 연 곳들이 많다.


관광객이 거의 없는 거리이기 때문에 낮에는 한가롭게 산책하고 테라스에서 커피나 맥주 한잔하기 좋다. 하지만 목, 금, 토요일 밤에는 산주안 거리의 식당에서 식사하는 현지인들로 엄청 북적여서 낮과는 아주 다른 에너지가 거리를 채운다. 예약하지 않거나 식사 시간 전에 자리잡지 않으면 비어있는 테이블을 찾기 어렵다.


바르셀로나에서도 힙하다는 식당들이 모여있는 산주안 거리는 슬렁슬렁 걸으며 산책하다가 시원한 맥주를 한 잔 마시거나 친구들과 시끌벅적 저녁식사를 하기에도 완벽한 곳이다.


바르셀로나에 사는 사람이라면 산주안 거리에 자주 가는 레스토랑이 두세 개 정도 있는데 브런치, 타파스, 꼬르따도, 까냐 각각 메뉴에 맞게 내가 즐겨 갔던 그 식당에서의 시간이 산주안 거리와 함께 떠오른다.








나, 아델


한국 회사 생활을 정리한 후 3개월 동안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을 보낸 바르셀로나는 꼭 살아보고 싶은 도시가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지 6개월 만에 다시 떠나 5년이라는 시간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루냐 사람들은 나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다양한 국적의 유럽 사람들은 내 회사 동료 혹은 친구가 되었다. 바르셀로나 도시 자체를 너무 사랑했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그 도시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워하는 마음도 크기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기억들을 조금씩 적어보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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