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냈던 바르셀로나는 런던, 파리처럼 이민사회가 크고 다양하지 못하다. 게다가 이탈리아나 프랑스 못지않게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스페인 사람들은 타지역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 그렇다 보니 스페인이나 유럽 스타일의 음식이 아니면 거부감을 크게 드러내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이유로, 바르셀로나에서는 초급 수준의 스시, 라멘, 웍 요리를 제외한 아시안 레스토랑을 만나기 어렵다. 그나마 있는 식당들도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는 곳이 많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큰 도시로 여행을 가면 아시안 식당이 무조건 우선순위에 있었다.
이런 나에게 시드니는 꿈만 같은 곳이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이민 온 아시아 사람들이 오랫동안 뿌리내린 덕분에 제대로 된 식당들이 많았다. 가볍게 한 끼 때울 수 있는 곳부터 누군가를 대접할만한 고급스러운 곳까지 선택의 폭도 넓었다. 시드니행 티켓을 예매하고 나서부터 아시안 음식을 최대한 많이 먹겠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시드니에서도 힙하디 힙한 킹 스트리트와 엔모어 로드에는 정말 다양한 나라의 음식들을 각각 다른 스타일로 맛볼 수 있었다. 뭐든지 비싼 시드니 물가가 많이 버겁기도 했고 운 좋게 피터의 집 밥을 자주 먹다 보니 처음 다짐했던 것만큼 많은 식당을 가지는 못했다. 그래도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뉴타운의 아시안 식당 네 군데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비건 타이 레스토랑
영업시간
월요일 -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10시
뉴타운에서 먹어본 아시안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는 식당이었다. 비건 식재료로 타이 음식의 맛을 고급스럽고 풍부하게 살렸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피터와 로잔나도 여러 번 추천했던 집이었다. 항상 사람들로 가득해서 테이블 잡기 어려운 곳이라고 했다. 친구들과 주변을 지나다 갑자기 가는 바람에 키친이 마무리하기 30분 전에 식당에 도착했다. 곧 문 닫을 시간이라며 손님 받기를 망설이는 사장님께 제발 한 번만 먹게 해달라고 조르면서 주문했다. 친구가 간절히 부탁할 때에는 왜 그럴까 싶었는데 음식 맛을 보고 나서는 그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됐다.
애피타이저로 먹은 비비큐 두부 사타이 BBQ Tofu Satay는 고기를 사용하는 꼬치 요리를 구운 두부로 대신했다.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땅콩 소스의 꼬소꼬소한 맛이 먼저 입안에 가득 펴졌다. 그다음 부들부들한 두부의 식감이 느껴지면서 두부의 고소함이 소스와 어우러졌다. 맥주랑 같이 먹으면 열 개도 혼자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메인으로 파인애플 볶음밥, 그린 카레, 굴 소스 야채볶음을 주문했다. 찹쌀이 살짝 들어간 볶음밥에 그린 카레와 야채볶음을 번갈아 올려먹었다. 감동스러운 맛에 친구들과 한입 먹을 때마다 돌아가며 리액션을 했다.
뉴타운에서 제일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회전 초밥 체인점
영업시간
월요일 -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뉴타운 역에서 멀지 않은 킹 스트리트에 위치한 스시 트레인은 시드니와 호주 전역에 있는 회전 초반 체인점이었다. 뉴타운에서 머무는 한 달 동안 서너 번이나 식사했던 나름 나의 단골집이었다. 와사비가 들어가 있는 초밥도, 여러 종류의 초밥이 계속 나오는 회전 초밥집도 3~4년 만에 만나 스시 트레인에 갈 때마다 한껏 흥이 올라있었다.
이 집도 점심시간에 가면 테이블을 바로잡기 어려웠다. 기본적인 초밥부터 바르셀로나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생선이 올라간 고급 초밥까지 다양했다. 초밥 이외에도 샐러드, 돈부리, 각종 라멘까지 다른 요리들도 따로 주문할 수 있어 선택의 폭이 넓었다.
더운 시드니의 여름날 차가운 시루 소바와 초밥의 조합은 정말 꿀이었다.
베트남식 비건 레스토랑
영업시간
월요일 - 일요일
오후 4시-오후 10시
비건들을 위한 베트남 식당인 비나 비건은 비건 비프, 비건 치킨과 같은 콩으로 가공된 재료들을 사용하는 식당이었다. 나에게는 많이 낯설었던 재료였고 고기 육수가 기본이 되는 포와 같은 요리의 맛을 어떻게 낼지 궁금했다.
친구들 일곱 명이서 몰려가 많은 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는데 익숙하지 않았던 재료에 대한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었다. 깊고 특별한 맛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한 번쯤 들러 먹어볼 만한 맛이었다.
낯선 비건 식재료들을 베트남 식으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곳이었다.
타이 레스토랑
영업시간
월요일 -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10시 30분
뉴타운에 도착하고 처음 갔던 레스토랑이었다. 킹 스트리트를 걷다가 쌀밥이 너무 먹고 싶었던 찰나에 눈에 들어와 "타이다! 타이!!"라고 소리치며 들어갔던 곳이었다. 시차 적응에 완전히 실패하고 하루 종일 비몽사몽 했던 정신이 깨어났다.
간단하게 한 끼 먹을 수 있는 타임포타이에서는 음식 종류를 고른 다음 원하는 재료를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그린 카레에 채소를, 친구는 팟타이에 템페가 더해진 야채를 선택했다. 가볍게 즐기는 분위기라 맛은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커리의 깊은 맛이 아주 좋았다.
메인 요리 하나에 15달러 정도였는데 양이 아주 많았다. 혼자 한 접시를 마무리하기에는 무리라 결국 남기고 나왔다. 두 명이서 간다면 사이드 하나, 메인 하나 시켜서 나눠먹어도 충분했을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보다 2배 비싼 가격에 3배는 많은 양이 나오는 호주 식당 스타일이었다.
맛있는 타이를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패스트푸드의 분위기가 나지만 음식 맛이 충분히 좋았고 원하는 재료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어 입맛에 맞게 먹을 수 있었다.
쌀국수 전문 레스토랑
영업시간
월요일 -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10시
뉴타운에서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너무 맛있게 먹은 집이었던 데다가 시드니의 다른 지역에서도 만나볼 수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인 로잔나가 대표로 있는 비영리 단체가 메릭빌에 있어 몇 번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을 만나러 갔었다. 이 날 로잔나의 동료인 사라가 메릭빌에 있는 자기 집 근처 레스토랑을 꼭 소개해 주고 싶다 해서 잇퍼에 가게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구순구개열을 가진 아이들의 수술을 돕는 일을 했던 사라는 10년 가까이 베트남에서 지냈다. 그런 그녀가 베트남에서 먹었던 쌀국수보다도 맛있는 집이라고 했다. 그동안 먹어봤던 소고기가 아닌 해산물이 들어간 쌀국수였다. 뜨끈한 국물을 한 숟갈 넘기는 순간 이 집은 내 인생 최고의 쌀국수 집으로 등극했다.
깊게 우러난 육수는 해산물이나 고기의 탁한 맛이 나지 않고 아주 깔끔했다. 깨끗하면서도 감칠맛이 풍부한 국물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꽤 더운 날이었는데도 국물만 계속해서 들이켰다. 쫄깃한 면발에 고수랑 숙주 가득 넣은 육수와의 조화는 완벽했다. 음식이 나오고 다들 말없이 호로록 쌀국수에 집중했다. 뜨끈한 국물을 비워내고 나서는 달달 시원한 베트남 커피로 마무리 지었다.
시드니에서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면 꼭 들려주어야 하는 레스토랑이다. 잇퍼에서 인생 쌀국수를 맛볼 수 있다.
맛있는 음식들로도 힐링되었던 뉴타운이었다.
12월 여름 여행
싱가포르 & 시드니 한 달 살기
바르셀로나의 축축한 겨울이 유난히 싫었던 그 해 12월, 뜨거운 태양을 즐길 수 있는 시드니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비행기로 21시간이 걸리는 시드니를 가는 길에 싱가포르에서 잠시 쉬어갔다. 시드니에서는 가장 힙한 동네인 뉴타운의 에어비엔비에서 한 달을 머물면서 시드니와 그 주변을 여행했다. 시드니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고 그들 덕분에 시드니와 호주를 10년 전에 여행했을 때 보다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머리와 마음이 같이 리프레시 되었던 12월의 여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