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3학년 때쯤이었을 겁니다. 저는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너무 빠른 속도로 웃자라서인지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손을 뻗으면 언제나 제가 상상하던 것보다 더 멀리 뻗어나갔고, 다리를 디디면 예상보다 더 멀리 나가는 바람에 허우적거려야 했습니다. 수수깡으로 만든 인형 같은 스스로가 창피했던 저는 체육시간이 될 때마다 뒤에서 적당히 얼쩡거리다가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맨 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늘 멀리 서 계시던 선생님이 이 쪽으로 오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저에게 다가오실 줄은 꿈에도 모르고 평소처럼 몸을 삐걱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목표가 저라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잠시 제 눈을 응시하시더니 다짜고짜 이런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너 핸드볼 해보지 않을래?
질문을 던지는 선생님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지해서, 주변의 시선이 모두 집중되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시선 집중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던 저는 선생님이 무슨 질문을 던졌는지보다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기분이 들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당황하는 저의 표정을 약간 오해하셨는지 몇 마디 더 던지셨는데요. 핸드볼을 하게 되면 뭐가 좋은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선생님이 뿌리신 미끼 중 하나는 핸드볼을 하게 되면 ‘U여자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수능 외에 시험이 하나 더 있었거든요. 제가 살던 곳은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이라서 고등학교를 갈 때도 시험을 쳐야 했습니다. U여자고등학교는 일반고 중 가장 높은 성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학교였고요.
엉겁결에 그러겠다고 답변을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매우 즐거운 표정이 되시더니 방과 후에 체육관으로 오라는 말씀을 남기고 다시 앞쪽으로 가셨습니다. 그때서야 아차 싶었습니다. 제가 핸드볼이 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황급히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그러기엔 선생님의 뒤통수는 이미 너무 멀어져 있었습니다. 핸드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체육관으로 가는 것.
그리고 약속한 방과 후가 되었습니다. 대충 챙긴 가방을 한쪽 어깨에 들쳐 메고 체육관의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알고 보니 신입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어린이들이 오늘 처음 온 게 분명한 표정으로 어리둥절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표정을 하고 그 사이에 끼어 앉았습니다.
곧 선생님이 오셨고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마구 뛰어서 체육관의 끝과 끝을 오간다거나, 끈적거리는 공을 던지고 받아본다거나 했던 것 같습니다. 훈련이라고 해도 특별한 건 없었어요. 얼굴도 능력도 모르는 애들끼리 모인 오합지졸일 뿐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을 훈련했습니다. 핸드볼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어요. 일주일째 되는 날, 여느 때처럼 체육관 문을 열고 들어가려다 체육관 가운데 앉아있는 누군가와 눈을 딱 마주쳤습니다. 유니폼인지 운동복인지, 본격적인 차림새의 여자 어린이였어요. 딱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구나 싶었어요. 아마 한 5학년이나 6학년쯤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 어린이는 발목에 반창고 테이프를 칭칭 감고 있었습니다. 하얀색의 그 테이프요. 지금 생각하면 그걸 감는다고 발목이 괜찮은가 싶긴 한데요. 아무튼 그러면서 여전히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니, 위아래로 훑어봤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하겠네요. 그러고는 욕을 했던 것 같아요.
아, 시발 존나 힘드네.
저는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던 그 애가 욕을 뱉은 건 본인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요. 그 순간 묘한 깨달음이 왔습니다. 이 핸드볼이라는 것을 계속하게 되면, 저 서열에 속하게 된다!
그날 운동이 끝난 후 핸드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었어요. 조금 먼저 운동을 시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신입들을 겁먹게 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니요.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봐도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동안 선생님은 저를 마주칠 때마다 다시 운동할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한결같이 없다고 대답했죠. 같이 하던 친구들도, 심지어 그때의 선배들도 저를 마주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어요. 저는 꾸준히 생각 없다고 대답했어요. 제가 버틸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으니까요.
나중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미끼 중 하나였던 U여자고등학교를 제 힘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공부 머리가 없지는 않았어서 그럭저럭 시험을 잘 봤고 간당간당하게 합격했거든요. 공부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엉망진창으로 생활하고 있었던 어느 날, 저는 초등학교 때의 그 선생님을 또 마주치게 됩니다.
여전히 체육시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몸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자라나 버리는 키 때문에 운동을 싫어했다면, 고등학교 때는 천천히 자랐기 때문에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몸을 쓰는 법도 어느 정도 익혔고, 제 몸이 운동하기에 좋은 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신나서 피구를 하고 있었는데 멀찌감치서 선글라스를 쓴 채로 이쪽을 바라보던 남자분이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너 핸드볼 해 보지 않을래?
그때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웃으면서 운동할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너무 늦지 않았어요? 라고 되묻고 싶었지만요. 제가 특출나게 운동을 잘하고 있는 상황도 아니었는데 키 하나만 보시고 제의를 주시다니, 새삼스러웠습니다.
성인이 되고 난 뒤에도 가끔은 그때의 일들을 생각하곤 합니다. 서열이 싫어서 그만두긴 했지만 내가 나의 둘도 없는 재능을 낭비하면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요. 그 당시에만 잠깐, 그 친구가 혼자 서열을 잡으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는데 제가 고정관념을 가진 건 아니었을까요? 키가 크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고, 그러기에 선생님도 고 2의 저한테까지 운동 제안을 하신 걸 테니까요. 늘 불편하다고, 어색하다고만 생각했던 제 키를 긍정할 수 있는 기회였을텐데 놓친 것 같아 때로는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지나간 일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