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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살찐년 김짜이 Oct 21. 2021

만화 운동화가 어찌나 갖고 싶던지

앞의 글에서는 키 크고 가난하지만 친척은 많았던 어린이의 의복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신발에 대해서 말해볼까 합니다. 옷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정말 단 한 번도 산 적이 없었는데요. 새 옷을 사기엔 집이 좀 가난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물려받은 걸로도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속옷과 양말, 신발의 경우는 온전한 제 것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옷보다 소모품의 성격이 커서였을까요. 속옷은 물려받기엔 좀 그렇잖아요? 양말은 새 걸 사도 쉽게 구멍이 나서 버려야 하고요. 신발은 금세 너덜너덜 떨어졌고요. 어릴 때는 지금과는 다르게 제법 얌전하게 돌아다녔는데도요. 아마 신발과 양말이 감당하기에 너무 쑥쑥 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신발을 아예 물려받지 않은 건 아니긴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언니들이 신던 멀쩡한 운동화나 어린이 구두 같은 걸 물려받았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쯤 되고 나자 너무나도 자라나 버린 나머지 키즈 사이즈는 신을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3학년인지, 4학년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6학년 신체검사 때 이미 키가 169.9cm였던 걸 생각하면 아마 3학년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네요.


옷의 유행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어린이였지만, 뜻밖에도 신발은 최신 유행을 따르고 싶었는데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만화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만화 운동화가 인기 있었어요. 유행하던 만화를 컨셉으로 디자인한 운동화였는데, 신발 중간쯤에 주인공이 그려져 있다거나, 운동화 혀에 주인공의 변신 아이템이 수놓아져 있다거나 하는 식이었습니다. 세일러문, 웨딩 피치, 천사소녀 네티 신발이 어찌나 갖고 싶던지.


하지만 단 한 번도 제 마음에 드는 캐릭터 운동화를 신어본 적이 없어요. 2학년 이전에는 신발을 물려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려받은 신발에는 언니들 때나 유행이었던 한물 간 캐릭터가 그려져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린이 신발을 신지 못할 정도로 발이 자라나 버렸지요. 


요즘 어른들이 농담 삼아 ‘여러분이 지금 할 수 없는 건 키즈모델뿐이에요!’ 라며 서로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게 생각나네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쓸쓸한 기분이 되곤 합니다. 일반적인 사이즈에서 벗어난다는 건, 키즈 시절에도 키즈를 신을 수 없다는 뜻이거든요.


정말로 갖고 싶은 게 생겼다는 건 어쩌면 어린 제게도 처음으로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는 이야기였을 거고, 한 걸음 성장했다는 뜻이었을 텐데 말이죠. 애석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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