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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Aug 24. 2021

나는 양은냄비 같은 사람이다

동남아 배낭여행 - 베트남,나트랑(1)


달랏에 도착했을 때, 한국 겨울에서나 볼 수 있던 두꺼운 무스탕을 껴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던 현지인들의 모습에 ‘저건 너무 오버 아니야’라고 속으로 웃음이 났던 나였는데, 나도 그 사람들 사이에서 차가운 바람에 맞서기 위해 두꺼운 후드를 하나 사서 껴입고 다녔었다.

우리에겐 ‘나짱’ 이라고도 잘 알려진 나트랑에 도착을 했다. 달랏에서 항상 껴입고 다녔던 두꺼운 후드티는 벗어던져도 충분할 날씨였다.


달랏에서 만났던 동행친구를 만났다. 저녁에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는 부지런한 그 친구를 따라서 짧은 시간 동안 유명한 식당에도 다녀왔다. 여행 중 동행친구는 말동무 그 이상이다. 식당에 혼자 가면 음식을 고를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는데 (특히나 배낭여행자는), 동행이 있다면 여러 가지 음식들을 다 먹어볼 수도 있고, 너무 맛있다며 호들갑을 떨어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 음식은 가격 대비 별로여서 조금 속상했다.)


식당에 나와서 친구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포나가르 사원에 은근슬쩍 나도 발을 담가서 같이 떠났다.



나의 무지였다. 어느 나라던 사원에 갈 때에는 다리를 가려야 했는데, 사원에 갈 것 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그냥 짧은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당연히 사원 경비원은 단호한 얼굴로 “NO”를 외치며 사원 앞에 위치한 마켓에서 바지를 사 입고 오란다. 당연히 사원 앞에 위치한 마켓에서 파는 금액은 바가지를 넘어선다! 

생수 한 병도 레스토랑 음료수 값만큼 비싼 게 관광지 앞 마켓 아닌가.


내 잘못이긴 하지만 속상한 마음은 감출 수 없었다. 티켓을 환불하고, 사원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동행친구를 기다리는데 나처럼 짧은 바지를 입고 온 서양 친구는 그냥 입장을 했다.

경비원에게 달려가 물었다.

“저 친구는 나처럼 짧은 치마 입었는데 왜 들어가는 거야?”

경비원은 영어 못한다고 그냥 “NO”만 외친다.


짧은 바지를 입고 온 내 잘못도 있지만, 이건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니야?

'이거 인종차별 아니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고, 인종차별 아닌 인종차별을 당한 나는 분노하며 티켓 사무소 가서 따졌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No


“No”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대놓고 인종차별을 당할 때에도 있지만, 정말 사소하고 치사한 인종차별도 자주 겪는다. 원래 치사하게 행동하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은 냄비 같은 스타일이라서 혼자 씩씩대며 사원 앞에서 발로 애꿎은 돌만 굴리며 있다가, 혼자 구경하고 나온 동행친구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내가 여기 다시는 오나 봐라.’ 사원이 예뻐봤자 뭐 얼마나 예쁘겠어라는 마음이었다.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엄마와 전화를 하며 오늘 일에 대해 하소연을 했다.

“아이고 우리 딸 속상했겠네~ 그런데 무슨 사원인데?”라고 물어보는 엄마의 질문에 그제야 사원에 대해서 구글링 해보며 사원에 대해서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포나가르 사원은 고대 참 파 왕국의 유적지로 베트남에 세워진 힌두사원이다. 불교 국가인 베트남에 세워진 힌두사원이라니? 게다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참파 유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란다. 아름다운 붉은 건물에,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사원에서 바라보는 나트랑의 경치라.. 


“우리 딸 속상한 마음은 알겠는데, 즐겁게 놀러 간 곳에서 괜히 차별당한 것에 분해서 아름다운 유적지 그냥 지나치면 너무 속상하지 않겠어?”

그렇다.

이 상황에서는 ‘안 하면 뭐 네 손해지’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까 사실 억울할 것도 없는 게, 짧은 반바지를 입고 간 것도 내 잘못이오, 경비원이 긴 바지나 치마 입고 오면 들여보내 준다고 했는데, 비싸다고 안 산 것도 내 잘못이오,

이 잘못들을 어떻게 인종차별이라는 걸로 꼬투리 잡아서 혼자 씩씩대고 있는 양은냄비 같은 나를 보고 있자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당장 다음날 시장으로 달려가 코끼리 바지를 2벌이나 샀다. 

코끼리 바지를 사 입고 다시 포나가르 사원으로 향했다.

전 날 우리 표를 검사하던 그 경비원이 있었고, 이번에는 순순히 보내준다.

경비원에게 다가가서

“나 바지 사 입고 왔어! 나 기억나?”

라고 외치니, 어제 그 단호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며 “Good”이라고 한다.


그늘 하나 없어서 정말 더웠던 포나가르 사원, 저 코끼리 바지는 여행 내내 뽕을 뺐다.
붉은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던 사원


햇볕 쨍한 한낮의 포나가르 사원은 무척이나 더웠다. 그러나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덕에 붉은색의 사원이 더 돋보였다.



포나가르 사원에서 보이는 나트랑 시내의 전경, 저 다리를 넘어가면 유명한 나짱 비치와 관광지가 있다.


나는 양은냄비가 맞나 보다. 부르르 끓고 식기가 무섭게 아름다운 풍경에 이렇게 신나게 또 부르르 끓고 있는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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