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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Aug 30. 2021

바래져가는 나의 쫄보스러움

동남아 배낭여행 - 베트남, 호이안(2)


새벽 5시의 호이안의 거리는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도 그 적막 때문인지 행여나 잠든 사람들이 깰까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숙소로 흩어졌다.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적막 없는 어두운 밤거리가 곳곳에 켜져 있는 형형색색의 등불 때문인지 무섭지 않았다.


호스텔 문을 열고 들어가 아무도 없는 로비에서 혼자 서성이다가 소파에 누워 있었다.

“끼익” 문소리가 들리고, 스태프 한 명이 나와서 감사하게도 얼리 체크인을 해줬다.

버스에서 다리 쭉 피고 왔다고 해도, 침대에서 제대로 잔 게 아니라서 온 몸에 찌든 피곤함을 씻어내기 위해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한 숨 자고 일어나니 벌써 점심시간이다.

나름 휴양지에 왔는데, 이렇게 있을 순 없다.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호이안 비치로 향했다.


음식값에 경치 값이 포함되었다고 생각하면 배가 좀 안 아플 맛

뷰가 좋다는 소울 키친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전용 비치를 두고 있어서 인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배가 고팠지만 역시 관광지에 위치한 식당이라서인지 가격대가 좀 세서 스프링롤 하라 시켰는데, 아이고.. 그냥 배나 채워야겠다 싶은 맛이었다.


선베드를 차지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덕분에 까슬까슬한 모래도 따스한 햇살도 듬뿍 받을 수 있는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았다.

스프링롤로 배를 채우고 해변가로 가서 타월을 깔고 누워서 사진도 찍고, 책도 읽고 밀린 일기도 썼다.

바닷가에도 들어가서 거닐고, 나와서 젖은 몸을 기분 좋게 부는 바람과 햇볕 아래서 말렸다.


그렇게 3시간을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숙소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려고 보니 수영복 자국대로 제대로 그을려져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선명하게 극과 극으로 나뉜 이 살색을 되돌리기 위해 인터넷에 구글링을 했을 테지만, 그을려진 내 피부가 좋았다. 거울을 보니 얼굴에 주근깨도 조금 올라와 있었다. 살짝 올라온 주근깨도 나쁘지 않았다.


그을려진 피부와 주근깨는 그만큼 내가 저 내리쬐는 햇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거니까





저마다의 소원을 적은 등불들 때문에 호이안 올드타운의 밤거리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형형색색의 등불로 가득 찬 거리를 걷고 있자니, 일본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름다운 거리를 걷고 있는데,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한국어 때문에 여기가 한국인지 베트남인지 구분이 안 갔다. (다낭과 호이안이 한국 관광객들에게 인기 인지라)

다음 일정은 다낭이었는데, 다낭도 호이안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호이안으로 넘어올 때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베트남 현지 아주머니가 추천해준 곳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혹시나 해봐서 구글링 해보니, 네이버에서의 후기는 많이 찾을 수가 없었다.

네이버에 후기가 없으니 괜스레 불안했는데, 구글에서 찾은 사진들을 보니 ‘아 이곳은 가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런 베트남의 느낌이 좋다. 여기가 목욕탕인가 싶은 느낌이 드는 빨간 목욕탕 의자들이 길바닥에 꽃 피워져 있고, 그 위에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는 좋다.


처음으로 계획해 놓은 루트를 변경하기로 했다. 걱정 쟁이인 나는 여행 시작 전 베트남 루트를 이미 다 정해놓고, 베트남을 떠날 비행기까지 다 예매해놨었다. 


처음이다.

세워 놓은 계획을 변경하고, 많은 정보가 없는 곳을 나의 느낌에 따라서 가기로 결정한 것은 말이다.

약간 걱정도 되었지만, 걱정보다는 흥분이 됐다.

‘괜찮을까?’ ‘ 뭐 어때? 다 사람 사는 곳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멋있다고 추천하는 곳인데, 한국 사람들이 써 놓은 리뷰가 없다고 지금 나 걱정하는 거야?’

한 5분 동안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다독이다가 의문을 던지고 보이지 않는 원맨쇼를 했다.


나 정말 배낭여행자가 되어 가나 보다.

배낭 하나 메고 즉흥적으로 계획도 바꾸는 걸 보니.


그을려진 피부만큼 나의 쫄보스러움도 조금씩 바래져가고, 늘어나는 주근깨만큼 숨어 있던 나의 용감 지수도 하나씩 드러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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