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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Aug 26. 2021

슬리핑 버스를 아시나요

동남아 배낭여행 - 베트남, 호이안 (1)


슬리핑 버스는 참 생소하다.

한국에서는 집에서 서울까지 가는 게 3시간 반, 인천공항까지 장장 4시간 반이 걸리는 여정의 버스만 이용해봤지, 12시간짜리 버스를 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버스로 12시간이나 걸리는 여정은 아마도 한국에서는 찾기 힘들 거다. 하지만 동남아에서 배낭여행자로 살려면 이 긴 여정의 버스가 익숙해져야 한다.

저렴한 금액으로 버스를 타고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어디 나라든 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배낭여행자에게 슬리핑 버스는 그냥 교통수단만이 아니다. 10시간에서 12시간 이상이 넘어가는 버스를 타게 되면 하루치 숙소비를 절약할 수 있다.

오후나 저녁에 버스를 타고 그다음 날 아침이나 새벽에 도착하면, 하루 숙박비를 줄일 수 있으니까 이건 뭐 1석2조다.

배낭여행자에게 하루 숙소를 절약한다는 건 두 끼 식사 값을 버는 거니까 얼마나 큰 일인지는 더 설명 안 해도 되겠죠?


그러나 버스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좁아터진 호스텔이어도 두 발 쭉 뻗고 잘 수 있는 침대와 어찌 비교가 되겠는가


본인의 선택이다.

비용을 지불하면 1시간도 안돼서 편하게 어디든 다닐 수 있지만, 우리는 가난한 배낭여행자 아닌가?





나의 첫 12시간 버스 여정이 시작되었다.


첫 소감은 나쁘지 않았다. 버스 회사마다 버스 컨디션이 다르다. 조금 유명한 버스 회사를 이용하면 물도 주고, 컨디션도 좋다. (좋다고 해서 우리나라 버스를 절대 생각하면 안 된다.)


동남아 버스는 에어컨을 과할 정도로 튼다. 버스에 비치되어 있는 누가 썼는지, 언제 빨았는지 모르는 찝찝한 담요를 저 쪽 구석으로 밀었다가 나도 모르게 오들오들 거리며 담요를 목 끝까지 덮을 정도라고 하면 대충 예상이 가려나?


키가 작은 나에게 딱 맞는 크기의 좌석과 180도까지 굽혀지지는 않아도 적당히 누울 수 있는 시트.


하지만 이것도 복불복이다.  안전벨트가 되지 않는 좌석, 시트 조절이 안 되는 좌석이 부지기수니 눈치껏 얼른얼른 이것저것 만져보고 내가 원하는 좌석에 앉으면 된다.


여러 번 타보니까 그래도 좋은 좌석은 1층보다는 2층이다.


우리나라처럼 좌석의 개수만큼 버스 티켓을 판매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을 받는다.

그래서 주말이나 명절 때면 1층 통로 바닥에 그냥 누워서 가는 현지인들을 간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고개를 돌렸을 때, 나를 빤히 보는 누군가와 의도치 않은 아이컨텍을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2층 친구가 올라가고 내려갈 때마다 풍기는 구수한 그들의 발 냄새에 잠에서 깰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살짝쿵 나는 게 발 냄새인데, 여행에 찌든 우리 친구들, 발 냄새는 구수함 그 이상이다.


장시간 버스를 이용할 때 꼭 내가 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물 섭취 금지, 음식 조절하기.


우리나라처럼 버스 타기 전에 휴게소에 내려서 맛있는 감자를 먹을 생각에 들떠서 기사님의 안내방송이 기다려지는 그런 휴게소는 없다.


화장실이 없는 빈 공터에 차가 설 때도 있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숲으로 들어가더라…), 휴게소에 내려서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이미 온 바퀴 손님들이 가득 차 있는 그런 화장실이 있는 일이 허다하니 말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나쁜 점만 있는 것 같지만, 슬리핑 버스만의 매력이 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깥을 내다보면서 잠이 들고, 눈이 부셔서 살짝 실눈을 떠서 바깥을 보면 아름다운 일출이 뜨는 그런 장관들을 볼 수 있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그득한 영상이 눈앞에서 플레이된다.


잠깐 멈춰서는 휴게소에서는 현지인들의 삶 그대로를 볼 수 있다. 그들의 일부가 된 듯 나도 함께 스며들어서, 옆에 아줌마가 사는 처음 본 음식을 나도 손가락 발가락 질 해가면서 사서 먹어볼 수 있다. 맛도 꽤나 좋다.


비행기가 1시간으로 빨리 흘러가는 타임랩스라면, 나는 조금 불편하지만 조금 시간을 더 들여서 천천히 내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여행을 하고 있다.


그렇게 12시간이 흘러서 새벽 5시에 나는 호이안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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