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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Sep 08. 2021

나쁜 엄마? 착한 엄마?

동남아 배낭여행 - 베트남, 사파(2)


아침에 일찍 눈을 떠 아침을 챙겨 먹고, 전 날 소수민족 여자분과 약속한 시계탑 앞에서 기다렸다.

다 비슷하게 생긴 옷차림에, 서로 전화번호 조차 주고받지 않아서 그냥 무작정 기다렸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아기를 등에 업고 저 멀리서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전혀 트레킹 투어와는 맞지 않는 차림새의 그녀에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청자켓에 쪼리, 심지어 아기를 업고 있는 게 아닌가

전 날부터 내린 비는 아침까지도 부슬부슬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어서 길은 진흙 투성이었다.

운동화를 신고 있는 나에게도 길이 미끄러운 지경인데, 쪼리에 아기까지 업고 어떻게 간다는 건지? 나 사기당한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또 절로 들었다.


나의 트래킹 가이드 Nhi와 그녀의 딸


안개가 그득히 깬 사파를 그녀와 함께 걸었다.

엄마 뒤에 업힌 아가는 콧방울을 만들면서 고롱고롱 잘도 자고 있었다.

좋은 길을 두고 그녀가 진흙이 질척거리는 산속으로 들어간다. 데이터도 잡히지 않는 이곳인데 왜 자꾸 산속으로 들어가는 걸까..

그녀의 복장에서부터 트래킹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서인지 쫄보인 나는 급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나 혹시 납치당하는 건가? 내가 납치당해도 누가 알아주는 이가 있을까?’ 라며 혼자 또 소설책을 쓰기 시작했다.

돼지가족들이 뛰어다니고, 병아리들이 뛰어다니는 진흙이 넘실거리는 숲 속을 벗어나니 이제 사람이 걷는 길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나의 소설은 급 막을 내렸다.

몇 번을 넘어질뻔한 그 거리를 그녀는 쪼리 하나로 정말 잘 걷는다.


변화무쌍한 사파의 날씨

진흙길은 더 이상 없고, 도로가 나오자 우리는 드디어 통성명을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보다 어린 그녀의 이름은 Nhi, 풀네임은 Nhi Giang이라고 했다.

사파를 태어나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는 그녀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다. 등에 업혀 있는 애기는 이제 겨우 9개월인데, 큰 딸은 혼자 집에서 지낼 수 있어서 집에 두고, 이 작은 아기만 업고 이 먼 사파까지 아침마다 나와서 팔찌랑 기념품들을 판다.

영어로 말을 할 줄은 알지만 읽거나 쓸 줄은 모른다고 했다.


갑자기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내더니,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줄 수 있냐고 했다.

숫자 쓰는 걸 배우고 싶다고 해서, 길을 걸으며 노트에 필기를 하면서 읽고 주고받고 하면서 걸었다.


한참을 걷는데, 한 여자아이가 책가방을 메고 룰루랄라 걷다가 Nhi를 보고 손을 흔들며 뛰어온다.


학교를 가는 길이라며 나한테 웃으며 Hello! 를 크게 외쳤다.

나와 Nhi가 영어를 주고받는 걸 보며, 자기도 같이 해도 되냐며 내 옆에 꼭 붙어서 까치발을 들고 노트를 보면서 크게 따라 읽었다.

트래킹 투어가 졸지에 영어로 숫자 배우기 투어가 된 것이다. 꼬마는 어느새 내 팔짱까지 끼며 신이 났다.

30분이 넘는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새 꼬마의 학교가 나왔다.

헤어지기 싫다는 듯 내 손을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자기를 잊지 말라며 교문 앞에서 내가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손을 흔들어대는 꼬마의 모습에 나도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Nhi는 딸들은 자기처럼 키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딸들은 공부도 열심히 해서 이 사파를 벗어나 큰 도시로 가서 대학교도 다니게 하고, 회사도 다니고, 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딸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모자에 있는 곰돌이보다 더 귀여웠던 아가!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서 대학교에 가는 게 당연한 요즘, Nhi의 소원은 딸들이 학교를 끝까지 다닐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서 발전이 더딘 나라들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게 당연한 일이다. 당장 내일을 위해서 다 함께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전 날 사파 도심에서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싶은 아이들이, 어른이 입고 있어도 불편한 전통옷을 입고, 추운 날씨에 바깥에 앉아서 물건을 팔고 있다. 아마도 그 아이들은 본인이 물건을 팔고 있는 줄도 모를 거다.


전 날 서양인이 말한 것처럼 아이들의 엄마는 정말 나쁜 엄마일까?

감히 그 사람들의 사정을 알지 못하는 나는 그 사람들에게 나쁜 엄마인지 착한 엄마인지 평가할 수 없다.


그러나 양말도 신지 않은 아이 옆에 앉아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엄마들보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엄마, 아이를 포대기에 꽁꽁 싸매고 열심히 일하는 엄마 Nhi는 착한 엄마라고 불러주고 싶다.


그녀를 응원하고, 그녀의 가족들을 응원한다.


Nhi가 적어준 그녀의 연락처. 다시 사파에 가게 된다면 꼭 연락해서 다시 한번 그녀와 트레킹 투어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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