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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Sep 14. 2021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시간과 사람들

동남아 배낭여행 - 태국, 치앙마이 (1)


버스로 국경을 넘는다는 건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그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내 눈앞에 있다.

라오스에서 치앙마이 (태국)으로 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라오스에서 태국 국경까지는 12시간 정도 걸린다. 다행히 뒷자리를 사수했다고 좋아했는데, 꼭 그런 것 만도 아니었다.

구불구불한 산 길을 돌 때마다 내 몸은 저 쪽으로 쭉 미끄러져가고 이쪽으로 쭈르륵 미끄러졌다.

손잡이를 꾹 잡고 눈 감고 그래도 그 12시간의 여정을 마쳤다.

12시간의 여정 후에는 벤을 타고 또 벤을 갈아타는 여정을 거치고서야 목적지인 치앙마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대로 앉을 수도 없는 버스에서 저 손잡이 만을 의지해서 12시간 누어서 디스코팡팡을 탔다.



한 달 살기의 성지 치앙마이

태국 북부에 위치한 치앙마이는 디지털노마드들의 성지라고도 불린다. 사람들과 뚝뚝으로 가득 차 항상 정신없이 시끌벅적한 방콕과는 다르게, 뚝뚝도 오토바이도  여전히 많지만 치안도 좋고, 북쪽이라서 겨울에는 선선한 날씨를 유지한다.

코워킹 스페이스나 아름다운 카페가 잘 조성되어 있고, 역시나 저렴한 물가에 한 달 동안 느리게 쉬어가려는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치앙마이에서 꼭 해보고 싶었던 무예타이에 도전했다. 복싱은 나름 1년 정도 배웠어서 무예타이도 비슷하니까 쉽겠지 생각했지만 정말 오산이었다.

아침에 호스텔에서 나올 때만 해도 날씨가 쌀쌀해서 긴팔 운동복이 없어서 조금 아쉽다 싶었는데 이게 웬걸? 손과 발을 함께 쓰는 운동은 정말 숨을 꼴딱 꼴딱 넘어가게 했다.

그래도 탁 트인 체육관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으쌰 으쌰 하며 아침 운동을 하니 그것도 참을만했다.


복싱장에서도 느꼈던 그 글러브에서 나는 꼬질꼬질한 군내가 싫지 않다.



또 어느 날은 동행 분과 함께 아침 요가를 하러 갔다.

원님만 1층에 있는 광장에서 매주 두세 번씩 무료 요가 클래스가 열린다. 돈 내고 원데이 클래스를 들으려는 사람들도 많은데 무료라니, 이게 웬 떡이야 싶어서 아침에 눈뜨자마자 세수하고 머리는 그냥 질끈 묶고, 운동복으로 갈아 입고 나섰다.

몰 옆에는 바리스타 대회에서 라떼 아트상을 휩쓴 유명한 바리스타가 하는 카페도 있어서, 요가를 하기 전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하기로 했다.


역시나 유명한 카페답게 작은 카페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라떼를 시켰다. 사실 나는 아메리카노파인데, 이럴 때 아니면 내가 유명 바리스타의 라떼를 먹어보겠어 싶어 거금 들여 주문했다. (크레이지 한 금액은 아니지만 길거리 커피에 비하면 거금이다)


우리가 받은 커피는 아트였다. 커피 위에 그려진 사슴과 나뭇잎, 하트 모양의 토끼와 나뭇잎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찰랑거렸다.


먹기도 아까운 커피를 한 모금하니 고소한 라떼가 속을 따뜻하게 데워줬다.

 사라져 가는 아트의 모양이 아쉬워서 한 입 마시고 보고 한 입 마시고를 반복했다.




커피를 마시고 도착한 요가 클래스는 아직 시작하려면 30분도 더 남았다.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어느 한 한국 여성분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한국 식당을 물어보셨다. 식당을 찾아드리며 이야기를 하다가 함께 요가도 하자고 제안했다. (여행의 묘미 아닌가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요가 매트도 제공해주는데, 요가 매트는 한정되어 있어서 일찍 온 우리는 다행히도 요가 매트를 얻을 수 있었다.


거의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요가를 시작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서, 옆에 있는 사람들의 요가 동작을 곁눈질하며 우리 모두 다 함께 호흡을 마시고 내쉬며 한 시간의 요가 클래스를 마쳤다.


여행 중에 운동하기란 쉽지 않은데 오랜만에 온 몸의 관절의 쭉쭉 늘어뜨려주니 앞으로 여행을 3달은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름다웠던 도이수텝에서의 밤, 하지만 그 보다 더 반짝거렸던 건 처음 본 그들과의 대화 시간들


요가 클래스를 마치고 동행 분과 아까 이야기를 나눈 한국 분과 함께 저녁에 도이수텝에 갔다.


아름다운 도이수텝에서 치앙마이의 야경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도 돌아와서 함께 저녁을 먹을 때까지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외국으로 이민을 가셨지만 항상 자신의 뿌리가 궁금했고, 그 이유로 말만 들어도 입이 벌어지는 나라의 대도시에서만 사시다가 강원도 시골로 건너와 지내고 계시는 분이셨다. 20대인 우리보다는 정말 오랜 시간을 먼저 사신 선배이지만, 본인의 이야기보다는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셨다. 우리의 고민을 들으며 함께 고민해주시고, 우리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주시며, 주옥같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마도 여행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이도, 하는 일도, 사는 곳도 다른 우리가 지금 우연찮게 만나서 함께 맥주잔을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동행분들과 함께 보낸 그 시간은 너무나 귀했고 또 값졌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시간을 나는 그날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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