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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도시와 우리

동남아 배낭여행 - 페낭, 말레이시아

by Dotori

숙소에서 배낭을 메고 나오니 등줄기에서 땀이 주르륵 흐른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등에 메어진 배낭에 뜨거운 열기가 더해져서 그런지 원래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느낌이다.

앞 뒤로 배낭을 들추어 메고 페리 선착장으로 나선다. 둘 다 여유를 두는 걸 좋아하는 터라 일찍 서둘러 나와서 시간이 조금 남았다.

페리 선착장 근처에 독수리 광장으로 걸어왔다.

랑카위는 갈색 독수리를 뜻한다. 아마도 랑카위 섬에 독수리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일까?


이 섬의 랜드마크답게 페리를 타고 들어오면 보이는 독수리 광장에는 거대한 (12 미터 높이의) 독수리의 모형이 랑카위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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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를 타고 오늘 이동할 곳은 페낭이라는 섬이다.

한국인에게는 페낭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식 명칭은 플라우피낭으로 주도는 페낭 섬 쪽에 있는 조지타운이다. 그러나 이 페낭섬과 연결된 육지 즉 도시 자체를 페낭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페낭에 대해 찾아보다가 나도 방금 알게 된 사실! )

페낭은 말레이시아의 전주라고도 부를 수 있다. 페낭에서는 다채로운 현지 음식들을 식당, 노천 식당, 호커 센터 할 것 없이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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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P가 폭 빠진 건 역시나 인디언 음식이다. 페낭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리틀인디아의 한 식당으로 데려간다. 데려가서 당당하게 음식을 주문하는 P은 싱글벙글이다.

이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에 대해 귀에 딱지가 앉히도록 설명했던 그가 내가 한 입을 먹고 나서 미간을 찌푸리며 “음~”이라고 외치자 암 그렇지 라는 표정으로 어깨가 한 껏 올라갔다.


P는 파니르라는 숙성시키지 않은 인도식 치즈 커리를 나는 치킨 마살라를 주문했다.

인도 음식은 항상 양이 적어 보이는 자그마한 그릇이나 접시에 커리를 담아주는데, 먹다 보면 배가 은근히 부르는 게, 마르지 않는 샘처럼 계속 커리가 아래에서 나오나 싶다.


맛있는 한 끼를 먹고 P는 Art Street으로 나를 이끌었다. 본인이 먼저 와본 곳이라서 그런지 당당하게 나를 여기저기 가이드 한다.


그가 이미 페낭 거리를 잘 알고 있었지만, 호스텔에서 받아온 페낭 지도에는 아트마다 번호가 적혀 있어서 그 번호를 따라 찾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조지타운 전체에 아트로 가득한 벽화가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붐비지 않고, 눈길이 주는 곳마다 새로운 그림들의 향연이었다.

아트 벽화가 없는 곳도 페낭만의 느낌이 가득한 건물들이 아름답게 줄지어져 있어서, 걷는 거리마다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릴까 싶어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설렘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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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거리를 걷고, 페낭에서 가장 높은 산 위에 있는 관광지인 페낭힐로 향했다.

올라가는 길이 구불거려서 멀미가 조금 있는 나는 눈을 꼭 감고 올라갔다.


페낭힐에 올라가니 우리나라 남산에서 볼 수 있을 법한 하트 자물쇠가 가득했다.

하트 자물쇠뿐만 아니라 하트 모양의 구조물 등 이곳은 사랑의 언덕인가 싶을 정도로 하트가 많았다.


하트 모양의 구조물 아래에는 하트를 만들며 사진을 찍는 커플들로 가득했다.

우리도 내려가서 찍어볼까 했는데, 괜히 저런 곳에 돈을 쓰는 게 아까운 마음이 먼저 드는 백팩커라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괜히 머쓱해서 손으로 하트를 만들

“여기 하트가 있는데?”라고 하니 갑자기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가 공식적인 연인 사이가 아닌 건 알지만, 장난으로 한 말에 저런 표정을 지을 일인가 싶어 괜히 민망해서 “장난인데, 왜 그래?”라고 말하고, 혼자 야경을 보러 갔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페낭의 야경을 보는데 저 멀리 바다와 빛으로 가득한 건물들이 나를 반겨준다.

반짝거리는 저 건물들과 다르게 우리 사이의 흐르는 기류는 고장 난 전구처럼 반짝임이 흐려지는 기분이다.

3472392977971390497_20250317181602691.JPG 하트 천국인 페낭힐
3472392977968815904_20250317181607284.JPG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는 페낭힐



그리고 페낭힐에서 내려오는 택시 안은 더 험난하다. 구불 거리는 게 더 심한 것 같이 느껴져서 눈을 감고 내려오는데, P가 말을 건넨다.


“저기,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말을 하는데.. 너는 나에게 정말 스페셜 한 존재야.. 그리고 너도 날..”

이라며 무드를 잡고 이야기하는 그에게

“저기… 정말 미안한데, 나 너무 멀미나. 너도 눈 감아. 내려가서 얘기하자.”


핑크빛 하트 모양으로 가득했던 페낭힐과 그의 고백은 스윗할 뻔했지만의 험난한 길에 못 이겨 잠시 멈춰야만 했다.


호커센터에 자리를 잡고 그 못지않게 말레이시아 음식을 잘 아는 나는 그를 위해 이것저것 음식을 주문했다.

먹음직스러운 꿰띠아오와 완톤(Wan ton) 누들을 주문해서 맛있게 먹으며 어지러운 속을 달랬다.


그제야 택시 안에서 끝맺지 못했던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둠으로 물들어가던 호커센터의 전구가 하나둘씩 켜지며 반짝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관계의 시작을 축복하듯.

3472392977966594080_20250317181611979.JPG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누들 두 개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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