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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ori Apr 10. 2020

여유로움에서 오는 자유로움

동남아 배낭여행 - 베트남, 달랏 (3)




 동행친구가 떠나고 난 후,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고작 이틀 정도를 함께 했는데 굉장히 허전했다. 혼자가 되니 뭔가를 하기가 귀찮아졌다. 나는 아무 계획이 없이 달랏에 왔으니 그냥 호스텔에서 뒹굴거릴까 하다, 요 며칠 본 달랏의 모습에 무언가 내가 놓치고 또 보지 못했던 모습이 있을 것 같았다.


 혼자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구글을 열심히 해보니 한 사진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을 들고 1층으로 뛰어가 호스텔 스텝에게로 쏜살같이 달려가 물었다.

“나 여기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가?”

시내와 떨어진 곳이라 차를 다시 잡고 올 수 없는 상황이라서 친절한 스텝이 그랩 오토바이를 부르더니 오토바이 아저씨와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왔다 갔다 하는 금액에 국립공원에서 구경하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꽤 괜찮은 금액으로 흥정하고 그곳으로 떠났다.



 

 오토바이 타는  무서워하던 나는 요새는 오토바이가 편하다. 쨍한 초록색 헬멧을  그랩 아저씨들은 영어는 못하시지만 친절하시다. 그리고 엄청난 운전실력도 가지고 계신다.

 그랩 아저씨들은 나에게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 이자, 혼자 여행하는 길에 잠시 대화도 나눌 수 있는 나의 짧은 여행 메이트였다.



 바람을 가르며 도착한 국립공원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자연 그대로에 조형물들을 장식하고 조립하여 아주 아름다운 포토존들이 그득했다. 베트남 현지인들도 주말에 놀러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네이버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정보를 혼자 잘 찾아서 온 나한테 너무 기특했다. 그 전에는 네이버의 정보에만 의지해서 돌아다니기 바빴는데, 한국어 정보를 영어로만 바꿔 쳤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볼 수 있다니 나 정말 우물 안 개구리 맞다.

 그런데 이 곳의 문제는 혼자 오면 사진 찍기가 힘들다. 친화력이 없는 나로서는 어찌해야 하나 우선 사진은 찍고 싶어서 줄은 섰는데 고민 고민하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톡톡 불러서 어색한 웃음으로 말을 걸었다.

 “안녕~ 나 혼자 여행 왔는데 혹시 사진 찍어줄 수 있을까?”


베트남 친구 덕에 건진 아름다운 사진


 고민 고민하다 물어본 내가 무색할 정도로 친절한 베트남 친구들은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혼자 여행 다니는 게 대단하다며 칭찬도 해주고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고 SNS 아이디도 주고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누군가와 (모르는 사람과) 짧은 시간에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는 일은 흔치 않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길을 걷다 모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짧은 눈인사를 하며 웃는다.

한 번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길가던 사람들에게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한다면? '저 사람 왜 저래?' 아니면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인가?'라는 반응이 날아올 것이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여유로워진다. 그 여유로움 때문일까? 우리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두려워하지 않고 다가가고 대화를 나눈다.

무언가를 보러, 쉬러 가는 것보다 여행의 이러한 매력 때문에 사람들은 떠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



 국립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는 카페로 향했다. 어떤 베트남 인스타 그래머의 사진을 보고 반한 카페가 있어서 꼭 가보고 싶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주말이라서 그런지 카페는 북적거렸다. 우선 음식을 주문하고 앉을자리도 없어서 모르는 사람들하고 합석을 하고 자리를 잡았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 흰 고양이 한 마리도 내 옆에 합석을 했다. 주문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손님은 기지개를 쭉 한번 켜더니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한참을 넋 놓고 보고 있는데, 이 손님에게 관심이 있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이 손님보다 더 귀여운 한 꼬마가 오더니 고양이에게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둘은 무언가 통하는 게 있던지 한참을 서로를 쳐다보고, 고양이는 꼬마의 손길이 싫지 않았던지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손길을 즐겼다.


 베트남에서는 길고양이, 길 강아지 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의 손길과 눈길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아마도 사람들이 해를 가하지 않고 이 꼬마와 같은 눈빛으로 바라봐주기 때문일 테다.

 한국에서 본 길고양이들의 눈빛은 사납다. 매섭다. 누군가에게 들킬까 항상 어둠 속으로만 파고들듯 달려 다닌다. 항상 경계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가엾고 아껴주는 눈빛도 많지만 그 고양이들에게는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일 테다. 이 고양이 손님 덕에 각 나라별 동물들의 행복지수가 궁금해졌다.



 여행지에서 내가 꼭 지켜야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절대 혼자 있을 때에는 어두스름한 골목이나 위험할 것 같은 곳에는 가지 않는다.

 숙소 근처에 저렴하고 맛있는 꼬치 집에 있다고 해서 구글맵을 보고 돌아다니는데, 구글맵이 자꾸 한 어둑한 골목길을 알려주었다. 언덕길이 많은 달랏이라서 맵 상에 나온 거리와 실제 걷는 체감상의 거리는 차이가 있다. 하루 종일 아침부터 돌아다닌 터라 돌아가지 말고 이 길로 갈까 라며, 가로등 아래에서 한 참을 고민했다.

'이 길로 가면 금방 도착은 하겠지? 그러나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이 길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 된다면 어쩌지?!'라는 쫄보 본능과 게으름 본능이 대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역시 쫄보였다.

씩씩하게 삥 돌아서 꼬치 집에 도착했다. 보이지도 않는 골목 사이에 쪼르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나도 한자리 잡아들고 꼬치들과 맥주를 집어 들었다. 위생상으로는 썩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이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어렸을 적 엄마가 눈이 올 때 데려가던 포장마차를 연상하게 하던 골목길 이름 없는 꼬치집



 꼬치는 한 스틱에 250원! 250원으로 지금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길거리 어묵 한 개도 500원은 하지 않는 시대 아닌가? 게다가 오이와 야채들을 투박하게 썰어서 접시에 한 가득 담아주셨다. 꼬치와 맥주를 다 먹어도 2,000원이 되지 않았던 그 날밤, 나는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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