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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꽃송이 Jun 11. 2019

나 이제 좀 쉬어도 될까?

퇴사하고 세계여행

#나 이제 좀 쉬어도 될까? -한국


“나 이제 돈 그만 벌고 싶어, 좀 쉬고 싶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남들보다 너무 빡빡하게 살아온 탓인지 서른이 되어서야 나는 꾹꾹 참아왔던 지침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그토록 원하던 전세 집을 얻어냈는데도 살림살이가 제대로 차지 않아 웽-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래서인지 퇴근 길도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나지 않으면 마음이 허했고,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가는 일도 잦았다. 외로운 게 아니라, 마음이 추수가 끝난 허허벌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가 된 것처럼 뭔가 공허함에 휩싸였다.


 “사는게 재미없다, 어쩌지…?”

고작 서른 살인 내가 이미 인생의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우는 일이 잦았고, 한숨이 늘었다. 하고싶지 않은 일을 돈 때문에 한다는 사실에 출근길은 늘 지옥 같았지만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삼키 듯 꾸역꾸역 걸었다. 나만 이렇지 않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있던 사실이었지만 가슴이 꽉 막혀왔다. 그저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적신호, 삶을 잘 버텼다고 생각했던 내게 이상신호가 왔다. 


사는 게 숨이 막혀 그냥 이대로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어느 오후, 

정말 오랜만에 길가에 즐비한 우수수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 사이로 파란 가을 하늘을 봤다.


“예쁘다“

간만에 무언가를 예쁘다고 생각했고, 이 예쁜 하늘을 매일 보고싶어졌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제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그 미래란 녀석 때문에 더 이상 이렇게 사바에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결국 나를 한국 밖으로 내몰았다.


“엄마, 나 여행 가려고”

“얼마나?”

“글쎄… 한 일년?”


엄마에게 십년 사이에 저 다녀오겠다는 말을 일방적인 통보로 이번이 세번째.


열아홉, 수능이 끝나고 옷 몇가지만 대충 챙겨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며 떠났던 그 겨울, 

스물셋, 갑자기 일본으로 가겠다며 떠났던 그 여름,

그리고 서른, 이제는 날 위해 살고 싶어 떠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는 다시, 겨울-


엄마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였지만 내심 서운함이 내비친다. 서른이 넘어버린 딸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또 한번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제 그만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셨을 테니.


매달 통장에 찍히는 돈은 600만원,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내가 하루 12시간이 넘게 일해서 받는 금액이었다. 돈이 전부라 생각하고 살았던 내가 제일 먼저 마음 먹은 일은 이 월급을 깔끔하게 포기하는 거였다. 전세대출자금을 갚느라 허덕이며 세상에서 1200원짜리 편의점 김밥이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아무리 돈을 많이 번다 한들 그것이 더이상 내 인생에 큰 의미는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까짓 돈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잖아”

어쩌면 조금은 늦은 깨달음이었다. 돈이라는 그 지독한 놈과 나는 이별을 하려는 것이다. 


나는, 보통의 서른이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을 다닌 것도 아니고 수번의 휴학 끝에 대학교는 결국 다 마치지 못해 자퇴했다. 여느 사람들처럼 돈이 최고라 믿으며 안정된 미래와 결혼을 꿈꾸는 그런 사람이었지만- 감히 내가 세계를 꿈꿔보려 사표를 던졌다.


“퇴사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되려 그만둔 다니, 여러가지 제안들이 들어왔다. 월급과 근무시간에 관한 것들이었지만 그땐 그게 꼭 악마의 유혹같이 느껴졌다. 


“저도 이제 제 인생을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어서요”

누군가는 내게 미쳤다고 했고, 누군가는 나를 걱정했으며 누군가는 나를 응원했다. 물론 응원보단 나무라는 쪽이 훨씬 많았지만.

 

잘 다녀와, 이 시간들이 너의 인생에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될 거다” 

아빠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먼 길을 떠나는 딸을 마중 나온 부모님 앞에서 서른 한 살의 딸은 미안한 마음과 감정이 복받쳐 목이 매였지만 늘 큰 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며 미안해 하는 부모님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저희 비행기는 곧 이륙해오니…”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한 낮, 강렬한 햇살이 새어 들어오는 사이로 창문 사이로 그제서야 나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설리임 반, 두려움 반의 마음과 내가 떠날 수 있는 용기를 내었다는 안도감에 아마 마음이 뭉클 했을 것이다. 


“언제죽을지도 모르는데, 제대로 한번 살아보자”

그렇게 나는, 살고 싶어서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고 용기의 문제다  -파울로 코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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