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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Dec 30. 2018

Prologue. 겁쟁이 여행자


“나는 사하라 사막에 갈 거야.”


왜 하필 사하라 사막이었는지는 여행이 끝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언젠가부터 나의 버킷리스트 1순위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은하수 보기'가 자리하고 있었고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하라에 갈 거라는 다짐을 입버릇처럼 내뱉곤 했다. 


"무섭지 않아?"


그리고 사하라를 보기 위해 모로코에 가겠다는 이야기 뒤에는 항상 비슷한 질문이 뒤따라왔다. 반복되는 이 질문에 ‘거기도 다 사람사는 곳인걸. 별로 안 무서워.'하고 의연하게 대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나는 겁이 많았다. 


그것도 엄청. 




©travelerhzoo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모로코는 사하라 사막을 보기 위해 수많은 여행자들이 발걸음을 하는 곳이다. 지금에야 모로코가 핫한 여행지로 꽤나 이름을 날리고 있다지만 당시의 나에겐 어디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조금은 낯선, 그런 나라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나에게 아프리카는 편견일지 실제일지 모르는 온갖 흉흉한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생소한 곳이었고 그 생소함에는 늘 막연한 두려움이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내가 모로코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던 건 ‘겁쟁이인 나’와 ‘여행자인 나’ 사이의 싸움에선 늘 여행자인 내가 이겨왔기 때문이었다. 다만 문제는 새로운 곳에 대한 궁금증과 환상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나면 나의 겁쟁이 본능이 서서히 고개를 치켜든다는 점이었다. 모로코라고 예외일리 없었다. 호기롭게 비행기표를 끊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온갖 걱정에 휩싸여 매일같이 검색을 일삼았다. 

 

아프리카 치안, 모로코 치안, 모로코 메디나, 모로코 여자 혼자…. 


검색결과는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 길을 잃기 십상이라는 복잡한 메디나부터 여행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게 일상이라는 삐끼들, 성희롱, 캣콜링…. 커지는 불안감으로 '여행자인 나'를 '겁쟁이인 나'가 누르려고 할때면 별이 쏟아지는 사막의 사진을 봤다. 그렇게 마음을 달래가며 나는 모로코로 향했다. 


누군가는 '저렇게 불안해하면서 여행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하고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이렇게 여행 전 나를 괴롭히는 겁쟁이 본능은 여행이 시작되면 쥐 죽은 듯 잠잠해지곤 했다. 


2017년 겨울, 나는 러시아를 횡단하겠다며 덜컥 시베리아 횡단열차 표를 구매했고, 그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걱정과 함께 온갖 흉흉한 소문들을 들려주었다.


"러시아에서는 영어 하나도 안 통하지 않아?"

"러시아 위험하다던데 괜찮아?"

"거긴 인종차별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겉으론 "실제로는 그 정도 아니래"하고 웃어넘기며 용감한 척 했지만 러시아에 도착해 블라디보스톡 공항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긴장으로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도로 이곳저곳 내 키만큼 눈이 쌓여있는 이국적인 러시아의 풍경도, 털옷으로 완전무장한 러시아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그저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기 바빴고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올 때면 긴장하며 가방을 꽉 그러쥐기 일쑤였다. 

여행 둘째 날이었나. 롱패딩과 목도리로 온 몸을 꽁꽁 싸맨 채 얼어붙은 해양공원을 구경하는데 큰 키의 러시아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주변엔 나와 그 뿐이었고 당연히 나의 경계심은 최대치였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계속 러시아어로 무언가 이야기했고 그의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했던 나는 영어로 "쏘리?"하고 되묻기만을 반복했다. 그는 답답했는지 결국 내 손에 들려있던 모자와 내 머리를 번갈아 가리켜보였는데 그제야 그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여기 추우니까, 꼭 모자 쓰고 다녀.”  


아저씨는 내가 모자를 꾹 눌러쓰자 만족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러시아를 백퍼센트 느낄 수 없게끔 방해하던 이유 모를 불안감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들의 차가운 얼굴 뒤에 숨겨져 있던 따뜻한 친절이, 그제야 눈에 보였다.      


©travelerhzoo, 러시아 아저씨가 찍어준 사진

  

이번 여행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겁쟁이인 내가 모로코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소한 순간들 덕분이었다.      


우리 동네처럼 느껴지는 숙소 앞 골목과

예상치 못한 순간 만나게 되는 작은 친절, 

누군가의 호의로 베풀어진 먼 이국땅에서 먹는 깻잎무침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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