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말라가
여행의 기분을 느끼겠다며 해변가에 있는 레스토랑에 무작정 들어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칵테일 한 잔을 주문한 뒤 가방에서 주섬주섬 포르투에서 산 수첩과 색연필을 꺼낸다. 눈 앞에 보이는 나무를, 모래사장을, 바다를 차근차근 수첩에 담아낸다.
한참을 그림에 열중하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분명 아까 자리를 잡고 앉았을때까지만 하더라도 꽤 밝았는데 어느새 주변이 어두컴컴하다. 가로등에도 불이 들어왔다.
턱을 괴고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데 고작 칵테일 한 잔에 취하기라도 한 건지 괜스리 기분이 좋아진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라가가 좋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보니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에도 그런 느낌이 드는 곳이 있다. '이 곳은 정말 내 취향일 것 같아.'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물론 반대로 ‘여긴 내 취향은 정말 아닐거 같은데…그래도 다들 좋다니까 일단 가보지 뭐.' 하는 곳도 있다. 나는 대게 그런 느낌이 잘 맞는 편이었는데 말라가는 전자였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내 예상이 맞았다.
말라가는 완벽히 내 취향이었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도,
불어오는 바람도,
내 목을 넘어가고 있는 칵테일 한 모금마저도.
어쩌면 이 모든 게 그저 알코올의 힘일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