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터C Apr 14. 2020

그것을 어찌
꿈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리움 열일곱> 

- 그리운 것들을 떠올릴 때면 이따금 처음부터 없었던 환상처럼 느껴지곤 한다     


     

한순간 밀려왔다 바람결에 사라져버리는 꽃.

그것은 꿈, 깨고 나면 그리움만 커져 자꾸 다시 눈감게 되는. 

비처럼 내리다 사뿐히 날아든 꽃잎 한 장에도 짓눌리는 어깨.

견디기 힘들다면 차라리 도망쳐나 버릴 것을.

발길은 잔인한 신기루 속으로 점점 더 파고드네. 

아, 지독도 해라. 가는 봄의 한 페이지.      


    철갑령에서부터 내려온 개울이 마을길과 나란히 흐르는 4월 말의 장덕리는 온통 복사꽃 물결로 출렁거리며, 봄의 가시는 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봄은 복사꽃마저 떨어지고, 광대한 초록의 스펙트럼이 한없이 단순명료해지면 마침내 끝이 난다. 움틈의 시간, 설렘의 시간, 여림의 시간…. 봄은 세상 모든 순수한 것들의 시간이다. 그 봄의 막차를 타고 강릉시 주문진읍에 딸린 이 외진 산촌에 내렸다.        


    복사꽃구름은 평지에도 펼쳐져 있었고, 때로 양지 바른 언덕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못가에 그늘을 드리우기도 했다. 나는 그 구름 아래를 목적 없이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낮은 담장의 집을 기웃거리며 주민들에게 말을 붙이곤 했다. 토종 자목련이 곱게 핀 어느 집 앞을 지날 때였다. ‘스삭 스삭’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어 안을 들여다보니 오래된 한옥 마당에서 한 노인이 비질 중이었다. 툇마루에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내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햇볕을 쬐고 있었다. 이미 충분히 깨끗한 마당이었다. 그러나 노인은 마당의 딱딱한 흙 위에 비로 쓴 자국을 남김으로써 하루의 할 일 중 하나를 마쳤노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대로 살아온 이 집의 이름은 ‘정가제(靜嘉齊)’였다. 이름 따위는 본래 없었다. 글씨에 조예 깊은 노인이 직접 쓴 현판을 건 후 그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집’으로 가꿔가고 있었다. 하루도 빼지 않는 비질의 그 부지런함이 비결이었다. 마당 가장자리로는 길에서도 보이는 자목련과 함께 겹벚꽃, 홍도화, 수선화 등이 서로의 꽃빛이 잘났다고 다투었다.       

    매화만한 크기의 복사꽃은 붉은 빛이 벚꽃보다 짙었고 진달래꽃보다 옅었다. 어중간한 느낌보다 요염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해가 기울 무렵이 되자 그 느낌은 더욱 확실해졌다. 힘을 잃고 쓰러져가는 태양의 남은 빛을 모두 빨아들이기라도 하겠다는 듯 꽃송이마다 욕심을 내며 달려들었다. 해는 사위를 황금으로 물들였고, 복사꽃은 그 빛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다가 결국 지쳐서는 저녁의 무거운 공기에 눌리어 차분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실 장덕리를 찾았을 때는 복사꽃이 끝물이었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꽃은 비 되어 내렸다. 수십만 그루의 나무에서 날리는 꽃잎은 여기저기 아무 데나 가서 떨어졌다. 꽃이 다 지면 봄도 끝나겠거니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 가벼운 꽃잎에 봄의 쓸쓸한 그림자가 묻어 있는 것 같아 갑자기 슬퍼졌고, 꽃잎 한 장 한 장의 무게가 비현실적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야속하게도 바람은 아무 때나 복사꽃밭을 뒤흔들었다. 큰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봄이 한 조각씩 떨어져 나갔다. 슬펐으나 또한 풍경은 아찔하였다. 꽃잎은 무거웠으나 또한 솜털처럼 가벼워 공중에서 춤을 추었다. 

    그런데, 이 끔찍이 황홀한 풍경이 끝나고 봄이 물러가더라도 이곳은 그 자체로 괜찮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연분홍 이불을 걷어낸다고 한들 철갑령에서 흘러내린 개울물이 갑자기 마르지는 않을 것이며, 또한 일대의 기묘한 바위들이나 집채만 한 둘레를 가진 은행나무도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킬 것이기 때문이었다.                




#복사꽃 #장덕리 #신기루 #꿈

이전 17화 봄아, 너 잠깐만 목련을 붙들고 있으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