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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C Apr 14. 2020

아름답지만 아픈 다랑논

<그리움 스물넷> 

- 내가 당신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당신은 알지 못한다나는 당신 자신도 모르거나 당신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당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그것 또한 사랑하기 때문이다     

  

    멀리서는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그것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가까이 다가가는 수밖에 없다. 가까이 가야 비로소 진짜 모습이 보인다. 큰 그림을 그리려면 멀찍이 떨어져서 관조해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 경우 뭣 모르고 짠 계획처럼 종종 현실과 동떨어질 때가 있다. 그런 계획과 그림은 표면적으로 낭만적이지만 실상은 지독히 폭력적이다.          

    남원에서 60번 도로를 타고 함양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도마마을은 스쳐 지나는 단 한 번의 마주침만으로도 쉽게 잊히지 않는 풍경을 보여준다. 다랑논이 마치 삼각주를 펼친 듯, 피라미드를 쌓은 듯 무척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는 마을이 그 다랑논과 어우러져 있다.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걱정이라고는 하나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런데 마을로 들어가자 실제 사정이 드러난다. 간혹 양옥이 보이긴 하지만, 흙집과 돌담이 아직 성성한 마을이다. 현재 이곳에는 약 40채의 집이 있다. 그러나 그 중 온기가 깃든 집은 30채 정도. 해를 넘길수록 그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주민은 60명쯤 되는데, 대부분 육칠십대다. 요즘은 한창 바쁜 모내기철이다. 물을 댄 논에 써레질을 해서 바닥을 고르고, 모를 심는다. 비료도 뿌리고, 모가 뜬 자리에는 다시 하나하나 심어주는 일도 거르면 안 된다. 이앙기를 쓰기도 하지만 이 손바닥만 한 논들을 채우는 데는 사람 손이 더 나아서, 주민들이 품앗이로 서로를 돕는다. 그러니까 멀리서 볼 때 멋진 다랑논 또한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증거물인 셈이다.      

    낯선 이의 방문에 주민들은 바쁘게 놀리던 손을 멈추고 ‘우두두둑’ 허리 관절을 조심스레 편다. 그리고 풀어놓는 이야기. 이따 분봉을 할 예정이니 구경할 요량이라면 다시 들르라거나, 어느 집 개가 새끼를 몇 마리 낳았다, 주민들이 점점 줄어가는 게 걱정인데 집이나 땅 살 사람 없냐는 둥, 같은 집에서 밥을 먹고 사는 동기간처럼 스스럼이 없다. 창고로 얼른 들어가 곶감을 꺼내오며 도마마을이 곶감으로도 알아준다고 자랑도 한다. 정이 넘치고 순박한 사람들이다.      


    늦은 오후가 되자, 논에 담긴 물빛이 반사되며 논배미들의 형태가 도드라진다. 그 모습이 극적이다. 각 논을 받치고 있는 돌담들이 검은 그늘 속에 숨고, 논은 잘 닦은 놋그릇처럼 황금빛으로 부서진다. 수백 년 세월을 거치며 척박한 산자락을 일궈 마련한 다랑논. 그 처절한 땀의 역사가 이처럼 마냥 아름답고 편안하기만 한 풍경으로 읽혀도 되는 걸까.      

    모내기를 미처 못한 논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백로 한 마리가, 자신을 향한 낯선 이의 집요한 눈길이 아무래도 성가신지 결국엔 날아올라 자리를 옮긴다. 백로는 심사가 좋을 리 없는 순간의 날갯짓마저도 우아하다. 그런데 그런 백로를 보며 시각적 이미지가 얼마나 큰 편견을 낳는지 새삼 깨닫는다. 단지 백로는 생긴 게 그럴 뿐이다. 어떤 짓을 해도 경박스러울 수가 없게 생겼다. 뱁새는 무얼 해도 백로처럼 우아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말 백로의 본성이 우아함 그 자체이며, 뱁새의 본성이 경박스러움 그 자체냐 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걸 모르지 않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을 백로과와 뱁새과로 분류한다. 첫인상만으로 그런 무례하고 위험한 판단을 서슴없이 한다. 그런데 표리부동하게도 남은 나를 편견 없이 봐주길 원한다. 이마가 좁고, 코가 뭉툭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나는 누가 봐도 선한 인상이 아니다. 게다가 연령대 평균 키보다 2cm나 모자라기까지 하니 내 분류법에 따르자면 나는 당연히 뱁새과다. 좋을 리 없는 첫인상을 가졌으면서 그걸로만 나를 판단할까 봐 전전긍긍. 나는 참 속이 좁고 뻔뻔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인간이다. 




#다랑논 #다랭이논 #도마마을 #백로 #뱁새 #논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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