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스물다섯>
- 오래된 것들은, 그것이 비록 본래의 쓸모를 잃었다 할지라도 지난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여전히 쓸모가 있다.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으로 들어갈 날을 기다리며
먼지 뒤집어쓴 채 잠자는 황학동.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도깨비시장에는
한창때 200여 개의 골동품가게가 있었지만
현재 남은 건 겨우 10개쯤.
청계천복원과 고층아파트건설로 상권이 붕괴되면서
그 많던 가게들이 골목에서 지워졌다.
그래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 상보당 안주인은
옛날 물건이라면 사람만 빼고 없는 게 없노라 허풍을 떤다.
가게로 들어서고 보니 그 말이 실없는 너스레만은 아니다.
시간의 뒤편으로 퇴장한 온갖 물건들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유독 시커먼 무쇠 풍구에 눈길이 간다.
실용허가 제1280호 예산 신안주물 제품.
만든 지 족히 50년 이상 된 것이란다.
함실아궁이에 생솔가지로 군불을 지피던 기억이 생생하다.
땔감이 없을 땐 어쩔 수 없이 그거라도 때야 했다.
그 매운 연기에 어찌나 눈물이 났던지.
그래도 풍구가 있던 집은 사정이 조금 나았다.
손잡이만 돌리면 센 바람이 주둥이로 나와서 불을 잘도 일으켰다.
그러면 두꺼운 구들장도 금세 따뜻해졌다.
방을 덥히거나 음식을 익히기 위해
굳이 아궁이에 불을 지필 필요가 없는 시대다.
재봉틀이 탁자 되고, 멍석이 차양막 되는 요즘이다.
이 풍구는 어떤 이를 만나서 또 어떤 형태로 이용될까.
쓰임새의 변용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 주인에게도 풍구를 보면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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