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1일은 새로운 다짐을 하기 좋은 날이니까?
나는 게으르다.
머릿속만 복잡하고 실천하는 것이 없는 엄청난 게으름뱅이.
20대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이젠 겁쟁이가 되면서 게을러지기까지 했으니 첩첩산중이다.
한 예로 브런치 작가만 되어놓고 여태껏 제대로 된 글을 쓰지 않았다.
2022년은 글을 생각으로만 쓴 한 해였다.
지금에야 돌이켜보니 뭐든 하려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아무거나 쓰기 싫었던 거다.
물론 핑계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일단 뭐든 써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가 이것이고 우선은 나에 대해 솔직하게 적어보기로 했다.
우리 집은 부유는커녕 평범하지도 않다.
난 부모님께 돈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자식의 한 학기 대학등록금이나 자취방 보증금을 대줄 돈 몇 백이 없어 은행에 대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매일 돈이 없다 없다를 입에 달고 사셨지만 굶거나 못 입거나 집 없이 사는 것은 아니었기에 정말 통장에 모아둔 돈 한 푼 없는 줄은 몰랐던 터라 적잖은 충격이었다.
내 나이 만 15세, 고 1 때는 학급 반장을 했다.
그리고 그 해에 병상에서 오랫동안 힘들어하시던 아빠가 세상을 떠나셨다.
만 18세에는 성적에 맞춰 내 고장 진주에서 집에서 등하교가 가능한 대학에 입학했지만 따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겨 한 학기 만에 휴학을 하고 반수를 준비했다.
반수를 하는데 딱히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마냥 수월한 과정은 아니었다.
지금보다 더 학벌이 중요하던 시절에 4년제 국립대를 버리고 2년제 사립 전문대를 한다고 했으니 엄마도 두 언니들도 처음엔 발 벗고 반대를 했다. 그러나 집안에서 막내와 똥고집을 맡고 있으며 18년간 하고 싶은 건 다하며 제멋대로 살아온 나를 막을 이는 아무도 없었다.
대학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 다니다 졸업했고, 자취방 보증금은 엄마로부터 빌렸다가 방을 뺄 때 돌려드렸다.
학자금 대출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출을 할 때 갚기 시작하는 날을 지정한다. 그 당시엔 뭘 믿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졸업한 해의 중반기부터 갚는 것으로 날짜를 정해버렸다. 되돌아보면 미친 도박이기도 했고 멋지게도 느껴지는 어린 날의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