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본인이 우울증에 걸렸고, 병원에 다녀왔다는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셈이었다고 했다. 나에게 조차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으니. 그런데 내가 우연히 컴퓨터를 하다가 알게 되었고, 나에게 가장 처음으로 본인의 상태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래도 남편은 내게 말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래, 진료 시간에 쫓겨 의사 선생님께 말하지 못하는 부분 나에게라도 말해줘"
남편은 가끔 가슴통증을 호소하기도 하고, 불안해하는 심정을 계속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숨기고만 있다가 집에서나마 말할 수 있게 되어 속이 시원하다고 하니 내가 다 뿌듯했다. 들어줄 수 있어서. 뭔가 남편과의 사이가 더 돈독해진 것 같아서 뿌듯했다. 남편의 상태를 진작에 알기를 잘한 것 같다. 남편이 혼자서 끙끙 말 못 하고 참아왔던 세월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우울증이라고 진단받기 전부터 남편은 오랫동안 참아왔다고 하던데.
그런 남편은 본인이 우울증인걸 철저하게 숨겨왔었고, 자신의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아 했었는데 갑자기 친구들, 직장동료들 몇 명에게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걸 알리기 시작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왔던 전전 회사 동기와 술 약속을 잡았다던 남편은 그에게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고, 정신의학과 병원에도 다녀왔다고 말했다고 했다. 나 이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처음 말했던 남편이 새삼 의외였었다. 내가 알고 있는 남편의 성격상 우울증이 나을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안 할 줄 알았는데 예상을 깨고 남편은 자신을 오픈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오랜만에 만났던 전전 회사 동기에게서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 사람도 남편의 이야기를 듣더니 본인도 우울증인 것 같다며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 거냐고 물어봤다는 것. 그래서 남편은 자신이 병원을 가게 된 계기와 병원을 찾아본 내용, 병원을 방문했을 때의 느낌 등을 그 사람에게 공유했다고 했다. 처음에 병원을 방문해야 할지 망설이던 남편의 전전 회사동기 분도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어 보려는 듯했다고 들었다.
남편은 가장 친한 친구에게도 만나서 우울증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친구조차도 본인도 우울증인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결혼식 때 말고는 남편과 연애할 때도 심지어 결혼을 하고 나서도 남편의 친구를 만난 적은 없지만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고 있는 내 기억 속의 남편의 그 친구는 참 개구쟁이 같고, 우울증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그 남편의 친구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변 상황이 우울증을 걸리게 만든 것 같았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봤을 때 오히려 남편은 본인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주변에 오픈한 것이 잘된 일인 것처럼 보인다. 주변 동료들, 친구들에게 그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한 상태를 알려주기도 했고, 그들에게 용기도 주지 않았는가. 그런 걸 보면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고 싶을 만큼 남편이 기특하고, 조금이나마 호전되는 듯해서 다행이다 싶다.
이후에도 남편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친한 동료에게도 본인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생각인듯한데 본인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동료의 태도나 말투가 달라진 것 같다고 한동안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남편의 가장 친한 동료였기에 나 또한 남편이 이로 인해 해코지를 당하진 않을까 함께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우리의 걱정과는 다르게 남편은 그 회사 동료와 친하게 지내고 있고, 어찌 됐든 별 탈 없이 회사도 다니고 있다.
자신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걸리고, 또 자신은 아니겠지 하며 외면하는 질병인 우울증. 보통 감기에 걸리면 병원을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정작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은 병원에 가려고 하면 몇 번의 고민을 거듭하고, 쉬쉬하고 망설이고 하는 걸까.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중요한 만큼 사회의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병원에 드나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