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와의 추억팔이.

by 방구석여행자


​​​​오랜만에 여의도로 다시 돌아왔다. 여의도에 오니 여의도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렸을 적 나는 머리가 아파서 여의도에 있는 병원으로 1년에 두어 번 정도 정기검진을 다녔었다. 그때 당시 초등학생이었어서 주로 방학 때 검진을 다니곤 했던 것이었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그때마다 인천에 사는 나는 엄마와 서울 나들이 겸 병원 옆에 있던 63 빌딩도 가곤 했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63 빌딩이 그렇게 높아 보일 수가 없었다. 아마 내가 어렸을 적에는 63 빌딩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었고, 수족관도 갔었고, 전망대도 올라가서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봤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추억이 있기에 비록 병원에 가는 것이었어도 여의도를 나섰던 게 신이 났던 이유였다.

나도 한 뼘 성장했고, 여의도 한강공원을 가족들과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차에 싣고 놀러 오곤 했었다. 그때 내 눈에 띄었던 무수한 빌딩 숲. 증권가의 중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높은 빌딩 숲은 어린 내게 꽤나 멋져 보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장래희망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여의도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고 동경해왔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대학을 졸업을 했다. 그러나 어렸을 적 꿈과는 다르게 이렇다 할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번듯한 직장을 다니기란 참 어려운 것이었다.


운이 좋게 미국으로의 어학연수를 다녀온 후 취업 준비를 위해 마음을 다잡고 취업 알선을 해준다는 컴퓨터 학원을 등록해서 다녔다. 성실하게 학원을 다니고 있던 내가 기특해 보였는지 하늘에서 기회를 준 듯했다. 취업 포털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두었었는데 한 회사의 연락으로 마침내 오랫동안 동경해왔던 여의도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사회생활 첫 스타트 실패 후 다시 찾아온 기회는 다름 아닌, 꿈의 무대 여의도. 그러나 정규직이 아닌 프리랜서(계약직)이었고, 기간도 짧았다. 고작 4개월. '도전해볼까, 말까'망설여졌다. 다 구축된 사이트에 안정화 기간 중에 빈자리가 생겼던 인력채용이었다. 그래서 업무의 부담은 사실 많지 않았다. 그때 당시 제시된 급여는 내 친구들 사이에선 꽤 센 금액이었다. 4개월 여의도에서 일해보다가 다른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의도니까. 여의도였기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비록 4개월이었지만 말이다.


4개월 동안 일하면서 좋으신 분들을 많이 만나 '회사생활이 이렇게 좋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실패했던 첫 사회생활에 대한 멘털이 회복될 수도 있었고, 일부러 주말에 시간 내어 놀러 와야 했던 여의도 한강공원도 일하다가 틈날 때마다 머리도 식히고, 점심을 먹고 나서 산책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4개월의 기한이 끝난 후 마지막 날 퇴근할 때는 '내가 다시 이 증권가의 중심 여의도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시원섭섭하여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다음 직장에서 다시 그 기회가 찾아왔었다.

다음 직장을 구했는데 근무지가 영등포였다. 그런데 6개월 정도 일하고 났더니 갑자기 사무실을 여의도로 이전하겠다는 것이었다. 시원섭섭하게 떠나보냈었던 여의도였는데 다시 출근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고 설렜다. '이번에 여의도 가면 뭘 하지?' 일할 생각보다 어디를 갈 지에 대한 생각에 더 기대가 됐었다. 다시 여의도로 가면서 이전보다 여의도공원이 더 가까웠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자전거를 대여하여 자전거를 타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자전거를 대여해서 갔던 한강에는 북유럽 여행 때 봤던 작은 인어공주 동상도 보면서 덴마크 여행에 대한 향수병도 지울 수 있었다. 봄철에는 남들은 사람 많을 때 사람 구경을 더 많이 하는 벚꽃놀이도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잠시 한가하게 할 수 있었다. 출근이 나들이였던 일상이었다. 1년 정도 그렇게 여의도에서 일하다 보니 더 이상 여한이 없었다. 여의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누린 것 같았다.

​이외에도 남편과 연애할 때 왔었던 벚꽃 놀이, 돗자리를 깔고 한강에서 야밤에 산책 후 먹었던 봉지라면과 치맥. 여름밤만 되면 한강 야경을 보면서 먹는 시원, 상큼한 망고빙수까지.

다시 여의도를 와서 일하게 되니 고향에 온 것 같이 여의도 냄새가 나고 그런다. 나만이 맡고,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여의도 냄새.


어찌 보면 일하는 게 싫고, 힘들다고 불평하면서도 내가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좋은 곳에서 추억팔이 할 만큼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던 것에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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