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출간됐을 때부터 읽고 싶은 책이었다. 호시탐탐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에만 담아두고 언제 살지 노리고만 있었다. 그런 내게 연말에 남편이 크리스마스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선물을 사주었는데 그중에 몇 권의 그림책을 고른 끝에 이 책이 드디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코요테. 코요테라고는 가수 코요테밖에 몰랐던 나였다. 이런 동물이 있었나? 그림책에서 본 코요테 그림은 생긴 게 들개 같았다. 개과의 포유류라고 한다. 동식물을 사냥해서 먹는 동물이라고. 죽어가는 코끼리 앞에 코요테가 다가와 인사를 하는 걸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책에서 보면 코요테와 죽어가는 코끼리의 표정이 서로 대비된다. 코요테의 표정은 기쁨에 넘치고 경쾌해 보이며 웃고 있는 데에 반해 코끼리의 표정은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 때문인지, 삶을 포기한 듯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는 듯 슬퍼 보이기도 하고 초연한 것 같았다. 코요테가 코끼리에게 말을 걸고, 인사를 건네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죽음. 인생에서 누구에게나 언제 어떻게 찾아오게 될지 모르는 것. 아마 어느 순간에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기에 더욱더 죽음이란 말을 들으면 숨이 턱 막히고, 무서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반드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 나는 특히나 죽는 게 무섭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이 들고, 죽으면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곁에 있을 수 없고,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으니까. 그런데 죽음을 무서워하고 슬퍼하는 코끼리에게 코요테가 말해준다. 꼭 내게 해주는 말 같기도 하다. “죽는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만은 아니야”라고.
이 책의 코요테가 말했다. 무언가를 먹고 전나무 밑에 똥을 쌌는데 그 똥이 당연히 있겠지 했던 똥이 갑자기 없어졌다. 코요테는 이상해서 몇 날 며칠을 지켜봤다. 그런데 어느 날 비가 왔고, 똥이 비에 스며드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똥은 봄에 새싹이 되어 무럭무럭 자랐다. 코요테는 그때 느꼈다고. 삶은 돌고 돈다는 것. 삶에는 끝이 없다는 것.
죽음을 앞둬 무서웠을 코끼리에게 큰 힘이 되는 이야기였다. 죽는 것이 무서운 나에게도 큰 힘이 되는 이야기였다. 코요테의 이야기를 듣고 웃다가 체리나무에 열려있던 체리들을 떨어트렸던 코끼리. 분명 체리도 이전에는 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코끼리도 코끼리가 아니었을 것이고, 코요테도 코요테가 아니었을 테지. 그리고 나도 이전에는 내가 아니었을 것처럼.
지금은 사는 것이 각박해서 이런 생각을 못하지만, 전생에 내가 무엇이었을까? 나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궁금해하고 흥미로워했던 적이 있었다. 이전에는 TV프로그램 중에서도 연예인들이 최면에 걸려 전생으로 빠져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재밌게 보기도 했었다.
코끼리가 마침내 쓰러졌다. 코요테는 그 쓰러진 코끼리 곁으로 다가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 후로 몇 번의 계절이 지나 코요테는 체리나무 곁에 있는 보라색 꽃 한 송이를 바라보았다. 코요테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꽃 한 송이가 바로 코끼리였다는 것을. 코끼리가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이 책의 앞 면지는 표지와 마찬가지로 연두색의 숲에서 사는 코요테를 상징했다면, 뒤면지는 체리나무 한편에 핀 보라색꽃, 다시 태어난 코끼리를 상징하는 보라색을 표현해 주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아직은 머나먼 이야기일 수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게 가깝게 다가올 수도 있는 죽음. 이런 죽음을 앞두게 됐을 때 다시 꺼내보고 싶은 그림책이기도 했다. 또한 죽음을 무서워하는 이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그림책이다. 죽는 것이 꼭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떠난다고, 다 끝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보면 다시 태어나서 시작이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에 다른 방식으로 내가 다가갈 수 있는 거니까. 죽음이 꼭 삶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삶은 돌고 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