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토끼

by 방구석여행자

그림책모임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던 그림책이라 읽게 되었다. 이 그림책은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그림책이라 더 친근했고, 읽어보고 싶었는데 매번 기회를 놓쳤다가 이번에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우리 모두 토끼와 거북이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다. 심지어 6살 아들도 매일 전래동화를 통해 읽어줘서 그랬는지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 토끼와 거북 이야기에서는 빠른 토끼와 느림보 거북이 달리기 경주를 하게 된다. 느림보 거북을 얕봤던 토끼는 한숨 자기로 하고 잠들어버린다. 그 와중에 따라잡았던 느림보 거북이 결승선을 먼저 통과하게 되는 이야기다. 자신보다 느린 거북을 깔보고 무시했던 토끼의 최후였다. 슈퍼토끼 이야기는 이 토끼와 거북 경주에서 진 토끼의 뒷 이야기였다.


토끼 재빨라는 거북에게 지고 난 후 자신을 뒤로하고 수군거리는 동물들에 시달리게 된다. 다른 동물들에게 경주에 진 것에 대한 변명을 해보지만 소용없었다. 토끼 재빨라는 어느덧 “느림보 거북에게 진 토끼”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항상 달리기 경주에서 1등만 하던 토끼 재빨라는 느림보 거북에게 졌다는 사실이 너무 창피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잠든 후 다음날 아침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거리는 온통 거북이 주인공이었다. 이 와중에 옷가게에서 슈퍼토끼 티셔츠는 공짜로 준단말이 토끼의 명예가 얼마나 나락으로 실추됐는지 그림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토끼 재빨라는 괜찮은 척하려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다. 달리기에 “달”자만 들어도 치가 떨렸던 재빨라. 사실 우리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뭔가 창피하고,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그거에 첫 글자만 들려도 치가 떨리는. 그래서 그런지 재빨라의 기분이 이해가 갔다. 재빨라는 점점 견디기가 힘들었고, 결국 달리기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토끼인데 재빨라인데, 달리기를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인데, 이걸 포기하고 지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었다. 걱정된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겼는데 역시나 달리지 않으려고 온갖 노력을 하는 재빨라의 삶은 무료했다. 주변 동물들은 다 달리는 달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달리지 않았다. 우리가 마치 재미있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면 힘든 것처럼.


재빨라는 달리기를 하지 않고, 달리는 법을 잊어버리고, 달리지 않기 위해 갖가지 애를 썼지만 온통 머릿속에는 달리기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는데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버린 재빨라였다. 그렇게 터덜터덜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달리기 대회에 참여 중인 동물들에 휩쓸리게 되었다. 다른 동물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니 재빨라는 자극을 받은 것 같았고, 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재빨라는 어느 순간 1등으로 달리고 있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달리기를 억누르고 억누르다 다시 시작하게 된 재빨라는 아무래도 행복했던 것 같다. 심장이 다시 뛰는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이겠지? 사는 게 재미없다가 재미를 찾은 기분. ‘산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느꼈던 순간이었겠다. 토끼가 달리는 순간 나까지 뿌듯하고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원래 나도 해외여행 가는 걸 가장 좋아했었다. 직장 다니면서 휴가는 꼭 비행기 타고 해외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비행기 타는 것도 그렇고, 해외여행을 참 좋아했던 나였는데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지금 비행기를 못 탄 지 어언 6년 차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재빨라처럼 가장 좋아하는 비행기 타는 것과 해외여행을 못 가다 보니 세상 축 늘어진 사람처럼 속상하고, 무기력하기도 했었다. 슈퍼토끼 재빨라는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달리기를 다시 하게 돼서 행복해졌지만, 나는 아직 비행기와 해외여행에 대한 갈증이 있는 상태다. 그래도 나에겐 기쁨을 주는 아이가 있고, 운동이 있고, 그림책이 있고, 비행기 대신 자동차로 운전하면서 근거리를 돌아다니며 나름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재빨라가 달리기를 통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다시 찾게 됐듯이 나도 언젠가는 가장 좋아했던 비행기와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는 그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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