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방구석여행자

이 책은 내일 있을 온라인그림책모임에 선정된 그림책이다. 내일 모임에 앞서 미리 읽어보기 위해 급하게 도서관에서 빌려와 보게 되었다. 글밥이 많지 않고, 페이지수가 적어 단숨에 두 번을 봤다. 이 그림책을 보자마자 계속 곱씹었다. 이 책을 내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내가 어렸을 때 이 책이 있었더라면. 나의 유년시절과 청소년시절의 그림에 대한 생각은 어땠을까?


나는 어렸을 적 유치원대신 미술학원을 다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지독하게도 그림에 취미가 없었고, 그림을 못 그렸고 그림에 자신이 없었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유치원대신 미술학원을 다녔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실력이 이거밖에 안 되냐?”라고 놀림을 받기 일쑤였고, 더욱더 그림을 그리기 주저했고, 그림을 그리려 할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미술시간 내내 여기 나오는 주인공 베티처럼 딴짓하고 가만히 빈 도화지로 있다가 자연히 숙제가 되어 그 미술 숙제는 그림을 잘 그리시는 엄마몫이 되었다.


그림에 자신 없어하던 베티 앞에 빈 도화지를 선생님이 한참을 보시더니 “눈보라 속에 있는 북극곰을 그렸네.”라고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 나도 이 말을 보고는 베티에 감정이입이 되어 ‘저 선생님이 지금 베티를 놀리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한번 시작해 보렴. 그냥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말이 베티에게 크나큰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게도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때 미술시간에 빈 도화지에 뭘 그려야 할지 몰랐을 때 이렇게 말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면 그때의 미술시간들이 그렇게 악몽 같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베티가 빈 도화지에 점을 찍었듯이 나도 뭔가 해보지 않았을까?


이 베티의 점이 그려진 도화지를 한참을 보신 선생님은 도화지에 이름을 쓰라고 했다. 점이었지만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을 해주셨던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의자 위에 금테 액자에 베티의 작품을 끼워 걸어두셨었다. 이 모습을 본 베티는 더 멋진 점을 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되었고, 다양한 점을 어떻게 하면 더 멋있게, 더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지 고민도 하게 되었다. 마침내 미술전시회에서 베티의 점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베티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이런 베티는 누군가의 멘토도 되었다.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던 소년에게 뭐든 그려보라고 조언을 했다. 그 소년은 떨리는 손으로 선을 그려냈다. 베티는 선생님이 자신에게 조언했듯 그 소년에게 똑같이 조언을 했다. 그 아무렇게나 그려진 선에 이름을 쓰라고. 조만간 그 소년의 선도 액자에 걸리고, 전시회에서 이름을 날리겠지?


요즘 나는 그렇게 그리기 싫어했던 그림을 취미로 조금씩 그려보고 있다. 항상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자신이 없었고, 내 그림은 못 그린 그림이라고 깎아내리기 바빴던 난데, 빈 종이에 일상에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그려내기 시작했고, 우스꽝스럽고 못나다고 생각했던 내 그림을 응원해 주고,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며 계속 그림을 꾸준히 그렸으면 좋겠다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한마디에 펜을 놓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꾸준히 조금씩 그리고 있기 때문일까? 그래도 그림실력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도 더러 듣고 있어 뿌듯한 요즘이다. 더 잘 그리고 싶은 욕심 때문에 신경 써서 그리다 보니 실력이 더 좋아지는 거겠지? 역시 뭐든 꾸준히 하면 발전하는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그림책도 내보고, 전시를 해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전시도 해볼 그날을 고대하며 시간 나는 대로 자신감 있게 그려볼 참이다.


이 그림책은 나의 유년시절과 현재의 내 모습이 반영되어 읽는 내내 행복했던 그림책이었다. 마치 인생그림책을 만난 기분이랄까? 왜 이 그림책을 이제야 알았을까? 진작 알았더라면 더 빨리 종이와 펜을 찾아 자신감을 갖고 그림을 그려봤을 것을. 지금도 아직 그림이 많이 부족한 내게 크나큰 위로가 된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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