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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Apr 20. 2024

여우

이 그림책은 그림책모임 추천도서였다.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보려고 하는데 그림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고, 글밥도 많아서 도무지 잘 읽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이 그림책을 한쪽 구석에 치워두고 보는 걸 미뤄두고 있었는데 반납할 때가 되자 이 그림책을 그래도 한 번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어느 날 숲에 큰 불이 났다. 개가 새를 구하기 위해 새 한 마리를 물고 달렸다. 그 새는 바로 거센 불길에 날개를 다친 까치였다. 개는 까치를 간호해주려 했지만 까치는 개의 간호를 받고 싶지 않았다. 개가 자신을 동정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자존심이 센 것 같은 까치였다. 그런 까치에게 개는 자신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고백을 했다. 개는 까치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면서까지 까치와 함께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멋지다고 표현하는 개는 긍정적이고 포용력이 있는 걸로 보였다.


개의 어떤 말도 졸지에 날개를 잃은 까치를 위로할 순 없었다. 까치는 자신을 숨기고 싶었고, 어둠 속에 숨었다. 까치는 슬픔을 어떻게 주체할 수 없었다. 마치 우울감에 빠진 이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듯했다. 어디론가 떠나기로 결심했던 까치. 그때 기다렸다는 듯 개가 함께 떠나자고 권유했다. 눈이 안 보였던 개는 까치에게 함께 다니며 자신의 눈이 되어달라고 했다. 까치는 개의 계속된 권유에 결국 체념하듯 개의 등에 올라탔다. 개는 까치에게 뭐가 보이는지 물었고, 까치는 보이는 것을 개에게 다 말해주었다.


개는 까치를 등에 태우고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바람이 까치의 깃털에 스며들자 까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너의 눈이 되어줄게. 너는 나의 날개가 되어줘”


이렇게 개와 까치는 서로의 눈과 날개가 되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둘의 사이는 각별해졌다. 계절이 바뀌며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짜 우정을 나눈 것 같았다. 그때 개와 까치의 곁으로 여우 한 마리가 나타났다. 여우를 보자 개는 반가워했지만, 여우가 자신의 약점인 다친 날개를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까치는 몸을 잔뜩 움츠리고 뒷걸음질 쳤다.  여우가 개의 옆으로 다가가 너희들이 달리는 걸 보았다면서 정말 특별해 보였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제 개와 까치 둘 사이에는 둘 뿐 아니라 여우가 생겼다. 개와 까치의 사이좋은 걸 본 여우는 분노와 시기, 질투의 감정이 들었다. 여우는 개와 까치의 사이를 흐트러뜨리고 싶었던 걸까? 까치는 여우의 이런 시선을 느꼈던 것일까? 개에게 여우를 조심하라고 했지만, 개는 오히려 여우를 감쌌다. 개가 먼저 잠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우는 까치에게 다가갔다. 아마 까치가 약해 보여서 그랬던 거겠지? 까치에게 다가가는 여우가 참 교활해 보였다. 처음에는 까치도 개를 두고 자신과 함께 떠나자는 여우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여우는 계속 까치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했다. 까치는 단호하게 이야기하며 흔들리지 않았었지만, 세상에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맞다는 듯 마침내 까치는 여우의 제안에 넘어가버렸고, 굳건해 보였던 개를 떠나지 않겠다던 결심이 흔들려버렸다. 까치는 잠든 개를 두고 여우와 함께 떠났다.


여우는 엄청 빠르게 달렸다. 까치는 개와 달릴 때보다 더 빠르게 달리지만 숨도 안 차는 여우를 보며 더욱더 가슴이 벅차올랐고 정말로 하늘을 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던 여우와 까치. 갑자기 여우는 까치를 몸에 벼룩을 털어내듯 휙 땅으로 던져버렸다. 그러더니 여우는 개와 까치가 외로움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처했던 기분을 개와 까치도 느끼길 바랐던 것이었다. 그렇게 까치는 홀로 남겨졌다. 그때 개가 생각났다. 까치는 조심조심 개를 찾으러 떠났다.


개와 까치의 우정이 특별하고 견고해 보였다. 그래서 여우가 나타났을 때 여우는 둘 사이에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마음이 약해 보였던 까치에게 여우는 다가갔고, 어느새 까치는 교활한, 자신에게 더 잘해줄 것 같은 여우에게 돌아섰다. 처음엔 달콤했다. 그러나 개를 배신한 대가는 혹독했다. 여우는 자신이 개와 까치에게서 당했던 외로움을 까치에게 복수했다. 그리고 날개를 다쳐 날 수 없었던 까치를 먼 사막에 버리고 홀연히 떠났다. 여우의 복수는 성공했다. 혼자 남은 까치는 자신을 생각해 줬던 개가 떠올랐다. 진짜 친구를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이었다. 그 진짜친구를 다시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개와 까치 둘이 다시 만나기를. 개는 아마 까치가 다시 다가가도 받아줄 것만 같았다.


이 책을 보면서 세상의 관계에는 영원한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자신의 이익에 따라 버리고 버려지는 관계라는 생각에 관계를 맺는 것에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 또한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었었고, 버리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했었다. 그중에는 진짜 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온 마음을 다해 잘해주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버려졌을 때란 관계의 덧없음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요즘 사회에서 진심을 다한 관계가 있긴 할까? 연락을 자주 하고 자주 만난다고 진심을 다한 관계라고 생각지 않는다. 서로를 아끼고 생각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걸로 그 관계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진정 자신을 생각해 주는 이를 버린 대가는 너무나 혹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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