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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Apr 19. 2024

용감한 아이린

이 그림책은 책 표지와 책등에 있는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바로 “용감한” 부분이 빨간색이었던 점. 과연 작가가 의도했던 것일까? 용기, 용감함을 이야기할 때 보통 우리는 빨간색으로 표현한다고 들었다. 빨간색이 ‘열정, 끌어 오르는 강인함’ 등을 상징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그림책은 주인공아이린이 눈보라가 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공작부인에게 드레스를 가져다주는 심부름을 해낸 아이린의 뚝심,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엄마와 아이린의 깊은 애착과 사랑도 엿볼 수 있는 따뜻한 그림책이었다.


공작부인에게 줄 드레스를 만들었던 엄마. 드레스를 다 만들어내자 긴장이 풀린 건지 갑자기 아프게 된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대신해 아이린은 눈보라가 매서운 상황에서 공작부인에게 드레스를 가져다주기 위해 길을 나서게 된다. 엄마는 위험한 상황이었던지라 한사코 말렸지만, 꼭 공작부인에게 드레스를 가져다줘야 한다는 아이린을 엄마는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던데. 여기 나오는 엄마 또한 아이린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단단히 채비를 하고 나왔던 아이린이었지만 예상보다 눈보라는 더 매서웠다. 드레스를 꽁꽁 쌌던 상자를 꼭 안고 어떻게든 공작부인에게 가기 위해 눈보라와 사투를 벌이던 아이린. 그럴수록 바람은 “맛 좀 봐라” 하며 더더욱 휘몰아쳤다. 바람은 왜 그랬을까? 아이린을 시험했던 것일까?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바람과 맞서 싸우며 제 갈길을 갔던 아이린. 그런데 바람은 계속 아이린을 괴롭혔고 결국 아이린은 공작부인에게 가져다 줄 드레스를 잃어버리게 됐다. 책 속에서 본 아이린의 표정에서 상실감과 허탈감이 느껴져 안쓰러웠다.


매서운 눈보라 때문에 눈이 많이 쌓여 길도 잘 분간이 안 됐고 눈이 무릎높이까지 쌓였다. 그런 와중에 빈 상자라도 어떻게든 가져가려고 애쓰던 아이린의 모습에서 나 같았으면 드레스 가져다주는 걸 포기했을 것 같은데 어찌 됐든 끝까지 공작부인에게 가려는 아이린의 뚝심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이린을 코웃음 치듯 아이린은 설상가상으로 발을 삐끗하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다 포기하려던 아이린은 멀리서 불빛이 반짝거리는 자신의 상황과 상반되는 따뜻해 보이는 집 한 채를 봤다. 아마 그 집은 공작부인의 집인 것 같았다. 그 집을 보자마자 아이린은 다시 힘을 내보려고 했다. 그러나 눈 쌓인 상황은 아이린을 도와주지 않았다. 쌓인 눈에 언덕을 차마 보지 못했던 아이린은 눈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이대로 삶을 포기하려 했던 아이린. 그때 사랑하는 엄마가 떠올랐다.


삶을 다 놓고 싶던 힘든 순간에 사랑하는 엄마를 떠올린 모습은 아이린과 엄마의 애착이 안정적으로 잘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나 또한 뭔가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삶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나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삶을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고. 나 또한 지금도 어떤 부분에서는 내려놓고 싶을 때도 많지만, 그때마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올리고, 간절한 꿈과 소망을 떠올리며 용기를 얻는다. 항상 삶을 포기할 용기가 아닌 지켜낼 용기를 주시는 하늘에 감사하다. 삶을 포기하고 싶던 아이린이 엄마를 떠올리고 어떻게든 팔과 다리를 버둥거리며 눈 덮인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 빠져나온 모습에서 아이린도 아마 이런 게 아니었을까?


아이린은 겨우 일어났다. 그런데 발목이 삐끗한 상황에서 어떻게 공작부인의 집까지 갈지 막막했다. 그러나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었다. 아이린에게 좋은 묘책이 떠올랐던 것. 빈 상자를 타고 언덕을 내려가려는데 처음에는 상자가 자꾸 꺼져서 쉽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하여 눈썰매 타듯 즐겁게 내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공작부인의 집 앞에 도착하게 된 아이린은 빈 상자를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눈앞에서 잃어버렸던 드레스를 보게 됐다. 마치 바람의 시험을 통과했다는 듯이 바람은 나무에 드레스를 잡아두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공작부인에게 기쁜 마음으로 드레스를 가져다줄 수 있던 아이린. 고생한 아이린에게 공작부인과 하인은 반갑게 맞아주었고, 맛있는 음식과 따뜻함을 선물했다. 아이린도 무도회를 즐겼도 다음날 아침 무사히 엄마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그림책을 보면서 나는 단계별 아이린의 표정변화에도 주목을 했다. 처음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드레스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자신감과 파이팅 넘치는 아이린이었다. 막상 나와보니 눈보라는 생각보다 더 심했고, 자꾸 자신을 괴롭히는 것 같은 바람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바람과 맞서 싸워 이겨내겠다고 더더욱 의지를 불태웠던 아이린이었다. 그러나 바람의 장난에 놀아난 아이린이 드레스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눈에 파묻히며 상실감과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눈밖에 나오고 빈 상자를 썰매로 쓰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희망찬 모습이었고, 공작부인 집 앞에 도착하여 드레스를 찾았을 때는 놀람과 동시에 환희에 찬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공작부인을 만나 드레스를 보여주었을 땐 뿌듯해 보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심부름을 성공적으로 해낸 아이린이 참 대단했다. 이러한 아이린의 이면에는 엄마와의 깊고 단단한 사랑이 있었기에 이 모든 걸 감당해 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의 아이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력,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엄마와 안정 애착이 형성된 아이린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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