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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Apr 23. 2024

사라진 저녁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지난 3년간 급격히 늘어난 배달서비스에 대해 이야기한 그림책이었다. 집집마다 현관문 앞에 쌓인 재활용들을 보면서 재활용을 바로 처리하지 않고 귀찮아하는 모습이 마치 우리 집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반성도 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아파트에 집집마다 다들 배달을 주문했던 통에 가게에 음식을 만들 사람이 없어 식재료였던 진짜 돼지가 그 아파트 앞에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실제 돼지가 나타나자 겁에 질렸던 아파트주민들. 괜히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쉬쉬하며 돼지를 숨기는데 급급했었다. 이들이 생각했던 이상한 소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감히 예상해 보자면 집값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뭐든 긁어 부스럼은 만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보였다. 한편으로는 동네에 좋은 것, 집값 오르는 건 적극적으로 유치하려 하고 나쁜 것, 돈이 안 되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내려는 지역이기주의 현상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그 와중에 돼지가 나타난 이 광경이 너무 신기해서 사진 또는 동영상을 찍는 사람, 잠자리채로 돼지를 잡아보겠다는 아이, 돼지가 싼 똥을 치우려는 청소부 아줌마 등을 보면서 만약 우리 아파트에도 돼지가 왔다면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이었다. 돼지가 우리 아파트에 나타난다면 과연 나는 어떤 모습일까? 무섭다고 도망가기에 급급할까? 우리 아파트에도 실제로 들개가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실제로 산책을 하다가 들개를 보기도 했었다. 들개를 봤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이와 산책하던 와중이었기에 눈을 마주치면 따라올 것 같아 최대한 모른 척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들개를 포획하기 위해 아파트에서 나름 덫을 설치했다고 들었는데 소용없었다. 어쩌면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이 만든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살 곳이 없어 인간들이 사는 동네로 점점 오는 동물들.


돼지를 잡은 아파트 주민들은 어떻게 할지 모여서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직접 요리를 해 먹기로 했다. 씻는다-잡는다-부위별로 나눈다-굽는다 총 4단계로 계획하여 착착 진행되었다. 서로들 돼지를 잡기 위해 준비물을 사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누구 하나 돼지에게 신경 쓰는 모습은 없었다. 모든 물건은 날이 밝기 전에 딱 맞게 도착했다는 대목은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새벽배송을 생각나게 했다.


다들 파티준비로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뭔가 장비 준비에 혈안이 되어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있는 우리네 모습도 보였다. ‘~해야지’ 하고 야심 차게 결심하고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준비에 지쳐 막상 하려 했던 일은 하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말이었다. 좋은 운동복, 운동화를 새로 구입하고 새해에 운동을 열심히 해보겠다고 야심 차게 결심을 하지만, 결국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우리의 모습 말이다.


책을 보면 돼지와 아이들이 같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른들이 자신의 일에 열중한 나머지 아이들에게 무관심하자 아이들이 돼지에게 도망가라고 귀띔을 해줬던 건 아니었을까? 아이들과 돼지는 한편이었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불을 지피자 불이 나는 줄 알고 물이 뿌려졌고, 한창 소동이 일어난 후 돼지가 사라졌다. 왠지 아이들이 돼지에게 “지금이야!”라고 속삭여줬을 것 같았다.


돼지가 도망간 후 돼지에게 데었던 아파트주민들이 치킨이나 닭요리를 많이 배달시켰던 것 같다. 가게에 또 사람이 없었겠지? 진짜 생닭이 와버리면서 이야기가 다시 시작이 될 것 같았다. 돼지에서 닭으로 동물만 바뀌었을 뿐 우린 또 똑같이 반복하고 있었다.


올해 볼로냐라가치상 수상작이라고 들었는데 여러 가지 메시지가 담긴 그림책이었다. 왜 제목이 사라진 저녁인지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요즘 우리가 직접 해 먹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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