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여행자 Apr 24. 2024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식물들의 관점에서 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그림책. 온라인그림책모임에서 한 달에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그 작가의 책을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데 이번달은 권정민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해서 봤던 그림책이었다. 처음 딱 이 책을 봤을 때 첫인상으로 표지가 분홍색 또는 보라색 비슷한 색으로 되어있는 게 내 마음에 쏙 들었고, 파스텔톤의 은은한 색감이 돋보였다. 그런데 내용까지 좋아버리니 이 책은 꼭 소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삼자의 시선에서 우리 인생을 돌아볼 수 있던 이 그림책은 개인적으로 권정민 작가의 그림책 5권 중 가장 좋았다.


식물을 키우려는 우리는 꼼꼼하게 살핀다. 식물을 사러 가서 마음에 드는 아이를 눈여겨보고, 그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보고 구매하게 된다. 그때부터 그 식물은 우리의 반려식물이 되는 것이다. 반려식물이 된 식물은 우리의 삶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또한 우리는 각종 경조사를 축하할 때나 개업식에 화환이나 화분을 선물하곤 하는데 “이런 장식 정도는 참을 줄도 알아야죠, 당신의 취향을 존중하니까요”라는 문장에서 말은 못 하고 우리를 위해 하기 귀찮을 수도 있는 장식도 기꺼이 달고 있는 식물들의 입장과 고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생의 대소사를 논할 때 식물을 선물하는 우리를 보면서 식물이 정말 우리 삶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에게 참 가까운 존재였구나.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로 식물들마다 눈과 입이 그려져 있는 모습이었다. 또한 그들의 기분 상태에 따라 표정이 다양하게 그려진 걸 보면서 단지 말만 못 할 뿐, 식물들도 저마다 다양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특히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은 못 하고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까?


우리의 삶에 깊이 개입하고 있는 식물은 때로는 삭막한 공간, 본인에게 맞지 않는 공간에 있어야 할 때도 있다. 적응하기 힘든 공간에 어쩔 수 없이 있어야 하는 고충. 우리도 때론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있었다.


나도 첫 번째 대학 진로를 택했을 때 내 적성에 맞았다고 생각을 했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적응하기 힘들었고, 결국 첫 번째 학교를 그만뒀었다. 내 적성에 맞는 곳을 택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실패해서 한동안 힘들었었고,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앞길이 막막했었다. 게다가 두 번째 수능시험 결과는 처참했다. 그래도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저기 알아보고, 취업률 좋은 학과로 무작정 들어가서 적응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걸 실패했던 사람의 보루였다. 컴퓨터에 컴자도 몰랐던 컴맹이었던 내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도 취득하고, 장학금도 받으면서 그래도 살아남았었다. 비록 대학이 끝이 아니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회사생활도 적응해야 했었지만 그래도 견디고 견디다 보니 신기하게도 살아지더라.


특히나 웃으면서 봤던 페이지는 숨 쉬는 법을 도와주겠다면서 사람들이 요가를 하는데 식물들도 옆에서 함께 요가를 하는 것처럼 표정과 움직임이 살아있었다는 것, 도서관에서 옆에서 같이 우리가 보는 책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는 것, 식물들이 화장실까지 함께 가는 장면을 보면서 화장실은 나라도 참기 힘들었겠다 싶었다. 나도 가족들과 함께 화장실을 가지 않는데 말이다.


우리가 힘들어서 우리 자신의 몸조차 돌보기 힘들어지는 그날이 오면 식물들도 함께 시들어버리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의 희로애락을 함께 느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어느 가까운 지인들보다도 더 우리 삶에 깊이 관여하고 옆에서 함께 해주는 것 같아서. 그렇게 보살핌이 필요한 식물이 힘들고 버겁고 지쳐버린 우리에 의해 버려졌지만 다른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가서 보살핌을 받고 다시 쑥쑥 크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버려진 강아지들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 다시 행복해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식물들이 우리 인생의 대소사를 함께 하고 있다는 것과 우리를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다 보고 느끼고 한다는 걸 식물의 입장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로웠던 그림책이었다. 비록 말을 하지 못할지언정 기분과 입장이 있고, 그걸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라진 저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