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던 그림책이었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까먹고 빌려오지 못했다가 이번에 도서관에 갔더니 이 책이 딱 보여서 빌려올 수 있었다. 일단 표지가 너무 예뻤다. 몽환적이었고, 밤하늘에 우주로 여행 간 듯한 그런 표지. 일단 표지가 예쁘면 합격이다. 글씨조차 무지개를 연상하는 듯한 색깔. 밤하늘을 수놓은 무지개라.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어떤 내용일까 기대가 되었다.
감정호텔이라는 곳이 있다. 그리고 그 호텔에는 매일 그 호텔을 지키는 호텔 지배인이 있다. 가장 먼저 소개됐던 건 슬픔이었다. 슬픔이의 방은 늘 어질러져있었다. 또한 너무 울어서 그 눈물로 인해 바닥까지 방에 물이 차오르고 아래층까지 물이 새기도 했다. 이런 슬픔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 바로 조용히 기다려주기. 슬픔이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잘 들리지 않는다고. 그럴 때 슬픔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면 슬픔이는 더 오래 호텔에 머무르게 된다고 했다. 두 번째로 소개됐던 건 분노였다. 분노는 소리를 빽빽 질러서 시끄러운데 그런 분노를 빨리 잠재우기 위해서는 가장 큰 방을 내어줘야 한다고. 한 번은 분노에게 다른 감정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진 작은방을 줬다가 수치심, 우울감, 죄책감 등 다른 감정으로 변했던 적이 있었다. 오히려 분노는 마음껏 소리를 지르게 해 준다면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분노가 떠나니 평화가 찾아왔다. 평화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친구였다. 그래서 호텔에 오랫동안 머물러 갔으면 좋겠는 친구 중 하나였다.
감정은 온갖 크기와 모습으로 호텔을 찾아왔다. 어떤 감정은 컸고, 어떤 감정은 작았다. 또한 보이지 않아서 빛으로 비추어야 보이는 그런 희미한 감정들도 있었다. 호텔 지배인은 호텔일로 바쁘지 않을 때면 호텔에 묵고 있는 감정들의 방을 각각 방문하며 각 감정들의 상태를 살폈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호텔에 닥쳐오면, 불안이 찾아왔다. 불안은 늘 모습이 달랐다. 어떨 때는 두려움일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죄책감일 때도 있었다. 불안은 주목받기를 좋아해서 늘 자신을 봐줬으면 한다. 그렇게 모든 감정들이 휘몰아쳐 버거워질 때면 호텔 지배인은 혼자 밖으로 나가 잠시 숨을 고른다. 그럴 때 갑자기 곁에 다가오는 친구가 있었다. 바로 감사였다. 감사는 따로 뭘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옆에 있어줄 뿐. 둘이 그렇게 멍 때리고 자연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냥 이 모든 게 좋다’라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수많은 감정이 오가는 호텔을 호텔지배인이 혼자 꾸려가려면 힘들지 않을까? 하는 순간에 자신감, 자긍심이라는 친구들이 찾아와 잘하고 있다고 위로해주기도 하고 어깨를 토닥토닥 치며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또한 모든 것이 안정되면 사랑과 기쁨이가 찾아와 함께 즐겁게 지낸다. 기쁨이는 호텔을 떠나기 전 희망, 안도, 만족감 같은 친구들을 두고 가서 호텔 지배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때 종종 감사가 찾아온다. 감정호텔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호텔에 어떤 감정의 이유로 찾아오게 되면 잘 추스르고 떠나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감정들은 각자 자신만의 감정으로 호텔을 방문한다. 또한 이런 호텔들에는 호텔을 방문하는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듬어주는 호텔 지배인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마음의 방이 있다고 하지 않은가? 그 우리의 마음의 방에는 크고 작은 감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감정은 마음에 자리 잡고 있긴 한데 내 마음속에서 너무 희미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가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가 느끼는 각각의 감정들에서 우리의 마음을 호텔에 비유하고 각 감정들을 객실로 비유하는 모습, 우리 각자가 기쁠 때나 슬플 때 누군가를 찾아가서 감정을 토로하면 그 감정을 가만히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이들을 지배인에 비유한 모습이 많은 공감이 됐었다. 그 지배인은 나 자신이 될 수도, 타인이 될 수도 있겠지.
얼마 전에 그림책감성큐레이터 강의 들으면서 강사님이 해주셨던 내용도 이 책에 많이 담겨있어 그때 그 강의를 복습하는 느낌도 들었었고, 최근에 나온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를 보진 않았지만 이야기만 들었을 때 그 애니메이션이 생각이 나기도 해서 이 책과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챙겨봐야지. 처음에 책이 예뻐서 관심 있었고, 내용은 크게 기대 안 했었지만 내게 여러모로 위로와 공감, 복습이 되었던 그림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