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판형이 일반 그림책과는 달랐다. 크기도 컸고, 중철제본으로 되어있어 가볍기도 했다. 그림 또한 만화체로 귀여웠다. 그림에 표정이 살아있다. 마치 애니메이션 한편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책에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주인공 백합이 나온다. 자신이 최고였다. 자신보다 최고라고 생각하는 꽃은 없었다. 모든 벌레들은 다 자신을 좋아해야 하고, 자신을 우러러봐야 하는 그런 삶 속에 살고 있었다.
자신의 향기가 좋고 아름다우니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온다고 생각한 백합.
“백합님은 언제나 아름다우셔.”
벌레들이 이렇게 이야기할수록 더욱더 자신감이 뿜뿜 해지던 백합. 그러던 어느 날 남색의 작은 벌레가 날아오고 있었다. ‘역시 쟤도 나에게 오는군.’이라고 백합은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남색 작은 벌레는 그런 백합을 그냥 지나쳐갔다. 백합의 동공지진이 있었다. ‘어? 어디로 가는 거지?’ 그 남색 작은 벌레는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풀에게 가는 것이었다. 그 풀과 놀고 있는 남색벌레를 본 백합은 처음 느낀 감정에 기분이 이상했다.
무시당한 적 없던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언짢았다. 뒤이어 파리가 백합에게 날아왔지만 백합은 파리를 내쫓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시무룩해졌다.
얼마 후 다시 그 남색벌레가 날아왔다. ‘그럼 그렇지, 네가 내게 안 올 수가 없지.’라고 생각했던 백합은 더 강한 향기를 내뿜으며 남색벌레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남색벌레는 백합에게 쐐기를 박았다.
“저는 남색주둥이노린재이고, 작은 풀은 달개비님이에요. 백합님은 인기가 많지만 전 백합님보다 달개비님이 더 좋아요. “ 하고 날아가버렸다. 이 말을 들은 백합의 기분은 어땠을까?
백합은 내로남불이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있듯이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무시했을 땐 그 대상이 받는 무시는 마땅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자신을 외면하는 대상을 만나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모든 대상이 다 자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인기가 많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할 순 없는 법이다. 인기가 많은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개인마다 각자 좋아하는 게 있는 만큼 그걸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고 해서 그를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잘 이야기한 남색주둥이노린재에 통쾌했다. 한 때 나도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나만 좋아했으면 좋겠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 슬픔과 분노를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할 순 없었고, 완벽하게 내 입맛에 맞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 다르니깐 말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대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백합이 알아차리고 콧대가 좀 낮아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