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상인' 노벨의 특별한 유언
2024년 10월,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죠. 이는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두 번째 사례로, 첫 번째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순간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Oslo 에서 시상식을 가진 반면, 한강 작가는 오는 12월 10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Stockholm 에서 시상식을 가질 예정이라는 점입니다. 1901년 노벨상이 처음으로 수여되기 시작한 이래, 스톡홀름에서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그리고 문학상의 시상식이 열렸고, 오슬로에서는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개최됐는데요. 유독 노벨 평화상만 오슬로에서 수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알프레드 노벨 Alfred Nobel 의 특별한 유언과 그 당시의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된 결정입니다.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과 철학은 매우 복잡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노벨은 발명가이자 화학자, 기업가로서 거대한 재산을 축적했지만, 그가 만든 발명품이 전쟁과 파괴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에 많은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생전에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던 그는 자신의 사후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남기고자 노벨상을 제정하게 되었는데, 이 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학 또는 의학, 문학, 그리고 평화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노벨이 1895년에 남긴 유언은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산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에 기여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상을 만들고, 각 분야의 시상식 장소까지 명확히 지정했습니다. 단, 다른 모든 상은 스웨덴에서 수여토록 한 반면, 평화상만은 노르웨이에서 수여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당시 스웨덴과 노르웨이가 연합 왕국 체제였던 것과 깊은 관련이 있으나, 굳이 평화상만을 노르웨이에서 수여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 설명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Union between Sweden and Norway'이라는 독특한 정치적 연합 상태에 있었습니다. 1814년 나폴레옹 전쟁 후 노르웨이는 덴마크로부터 독립하여 스웨덴과 연합을 맺었지만, 두 나라는 서로 다른 정치 체제와 문화를 유지하면서 동일한 군주를 공유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에서 알프레드 노벨은 두 나라의 역할과 특성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것으로 보입니다. 스웨덴이 군사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더 집중한 반면, 노르웨이는 국제적 분쟁 중재와 평화로운 해결을 지지하는 입장이 강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 의회는 국제 사회에서 평화를 위한 역할을 강조했으며, 이는 알프레드 노벨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가 평화상을 심사하고 시상하는 데 있어 더 적합한 곳은 노르웨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노벨은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에 악용되는 것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평화의 상징성을 강화하기 위한 이상적인 장소로 노르웨이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그의 유언을 통해 구체화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은 스톡홀름에서, 평화상은 오슬로에서 시상되는 이 차이는 두 도시의 역할과 상징성에서 차이를 보여줍니다. 스톡홀름은 노벨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그의 과학적 업적과 예술적 기여를 기리는 장소로 선택되었습니다. 문학상은 예술적 성취를, 과학 관련 상들은 인류의 진보를 상징하며, 이는 스웨덴의 국력과 과학적 전통을 반영한 선택이었죠.
반면 오슬로는 인류의 평화와 화해를 상징하는 도시로, 국제 사회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노르웨이의 특성을 대변합니다. 노벨 평화상은 전쟁과 갈등을 해결하고자 한 노벨의 이상을 실현하는 상으로, 오슬로는 그 이상을 기념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며, 이 글을 통해 독자들도 노벨상의 배경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학과 평화는 서로 다른 분야이지만, 공감과 이해를 위한 상이라는 공통된 목적을 공유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