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달콩이는 하루 만에 우리 집에 적응한 듯했다. 구석구석을 활보하고 다니며 집안을 파악하더니만 온갖 물건들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명 ‘우다다다 타임’, 그러니까 갑자기 초흥분 상태가 되어 미친 듯이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행동을 종종 했다. 새벽에는 자고 있는 우리의 침대 옆에 와서는 낑낑 소리를 내며 깨우기도 했다. 밥은 또 얼마나 잘 먹는지. 사료를 전혀 씹지 않고 꿀떡꿀떡 삼키는 바람에 양말 속에 사료를 한 알 한 알 숨겨주니 달콩이는 그제야 오도독 씹는 척이라도 해주었다. 달콩이는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친구였던 것이다. 그럴 때면 우리 부부는 참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우리 집에 오자마자 배변 패드에 대소변을 가리는 기특한 녀석이기도 했다. 인간의 심장을 녹여버리기 충분할 만큼의 애교를 장착한 달콩이는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앞에서 배를 뒤집었다. 이전에 시츄를 키웠던 내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릇 강아지란 사람의 무릎에 올라오길 워낙 좋아하여서 자꾸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게 되는, 하루에도 아주 여러 번 다리의 저릿함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였으나 달콩이는 조금 달랐다. 우리의 발뒤꿈치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양 졸졸졸 따라다니다가도, 무릎에 앉혀보려 하면 꼭 그 짧둥한 다리로 총총총 도망을 갔다. 그러다 쳇, 하고 섭섭해지려고 할 때 즈음이면 달려와 뽀뽀를 해달라며 우리의 어깨를 폭신한 앞발로 팡팡팡 치는 그런 녀석이었다. 다리가 아니라 심장을 저릿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었다. 달콩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을 가진 강아지였다. 누구에게도 달콩이의 성격이 어떻다, 라고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달콩이는 소심한 듯 당차고, 새침데기인 듯 애교쟁이이고, 독립적인 듯 주인 껌딱지였다.
데려올 적엔 3.5킬로 남짓 되었던 달콩이. 예방접종 때문에 우린 2주 간격으로 동물 병원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달콩이는 1킬로씩 늘었다. 선생님은 항상 흡족한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셨다. “달콩이 아주 무럭무럭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네요.”,라고 말이다. 달콩이의 몸이 점점 길어지는 동시에, 수제비 같던 두 귀는 점점 하늘로 쫑긋 섰다. 산책을 나갔다가 어떤 어르신께서는 “이거 토끼랑 믹스된 거 아니여~?”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 무렵쯤 되자 나는 달콩이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달콩이가 마냥 천진난만한 아이는 아니라는 것. 달콩이는 마음이 아주 여렸다. 그리고 다소 예민했다. 내 친구도 같은 시기에 강아지를 입양했는데, 친구가 혼을 내도 그 반려견은 그리 기가 죽지 않았다. 반면 달콩이는 조금만 단호하게 굴어도 토끼 같은 귀가 뒤로 접혔다. 그리고는 곧바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본인이 상처 받았다는 티를 내곤 했다. 특히 달콩이는 말이 굉장히 많은 편인데, 우리에게 고개를 돌린 채 “꾸웅꾸웅, 헹!” 등의 강아지 언어를 구사했다. 그리고 안 하던 소변 실수를 갑자기 하는 등 행동에서 바로 그 스트레스를 드러냈다. 내가 강아지 마음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지만 분명 반항하려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에 너무 큰 영향을 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입양한 지 두 달이 흘러가고 달콩이 나이가 5개월을 지나고 있는 이 시점. 이갈이 때문인지 개춘기인 건지 양육 방식의 문제인 건지 아니면 함께 있던 자매와 떨어지며 경쟁 상대가 사라져서 그런 건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달콩이는 많은 부분에서 처음과는 달라졌다. 사료를 잘 먹지 않고, 실외 배변을 성공한 뒤로 집에서 배변 실수를 하기도 하고, 또 보호자가 없으면 안 되는 그런 강아지가 되었다. 게다가 닭과 연어 알러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강아지 간식이나 사료에 닭이 들어가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닭 알러지는 꽤나 치명적이다. 까탈스러운 녀석 같으니. 이런 달콩이를 점점 지켜보다 보니 나와 남편을 참 닮았다. 여리고, 예민하고, 어떤 부분에서 참 까탈스러운 것까지. 어쩌면 외모까지도 달콩이와 우리는 조금 비슷하다. 멍청해도 좋으니 예민하지만 말아다오!라고 생각했건만, 우리를 쏙 빼닮은 달콩이가 우리의 반려견이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인갑다.
달콩이가 오늘은 아침부터 토악질을 하려는지, 배부터 시작된 꿀럭꿀럭이 가슴까지 꿀럭꿀럭 올라왔다. 목에서 꿀꺽꿀꺽 넘기더니 용케 토를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워졌다. 평소 위가 약해서 내가 매일같이 챙겨 먹는 양배추를 삶아서 달콩이에게 주었다. 푸흡, 웃으면 안 될 상황인데 웃음이 났다.
“달콩아. 다 닮아도 되는데 제발 엄마 위만 닮지 말아 주라. 응? 내가 너한테 양배추를 다 멕이고 말이야. 앞으로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크자. 달콩아.”
이렇게 우리는 진정 가족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