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달콩이를 입양하기 전부터 입양한 이후까지도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나는 강아지를 입양하고 싶어서 몇 달간 지독한 속병을 앓았지만, 그럼에도 한참 동안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반려견을 입양하는 순간부터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까지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적당히 고민하고 결정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당장 나는 직업도 없었다.난 강아지 키울 자격도 없어,생각하며 꽤 오랫동안 무력하고도 울적한 나날들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깨달았다. 도저히 내 의지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그렇게 마침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남편을 설득한 뒤에야 겨우 달콩이를 입양할 수 있었다.
달콩이를 집에 데려온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는 부모님께 달콩이 입양 소식을 알렸다. 입양 전 말씀드릴까 고민도 했지만 무작정 반대하실까 봐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싸늘했다. 다시 돌려보내라고까지 말씀하시기에,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못을 박고는 엉엉 울었다.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부모의 허락 없이 무언가를 행하는 건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 날 엄마는 우리 집에 오셨다. 마침 김치를 새로 담가서 갖다 주려던 참이었는데 그런 깜짝 소식을 듣게 되어 너무나도 충격이라고 하셨다. 강아지를 입양한 게 무려 충격까지 드실 일인지 처음에 나는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듣다 보니 엄마는, 낳으라는 애는 안 낳고,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꽤나 상기된 목소리로 말씀하고 계셨다. 애 낳으라는 잔소리의 내용은 뻔하디 뻔한 클리셰이기 때문에 이 글에서 굳이 구구절절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여간 엄마도 그동안 2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참으셨기에 그 날 폭발하신 듯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낀 채, 엄마와 멀찍이 떨어져서는,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달콩이를 만지며 눈물과 콧물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그러면서 나 역시 무언가를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엄마, 단 한 번 만이라도. 나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고 싶어요. 현실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당장 원하는 일을 철없이 행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기적이고 속없는 사람이라고 하셔도 좋아요. 제가 그토록 간절히 바랬던 일이고, 지금 저는 달콩이가 있어서 행복해요. 그럼 된 거 아니에요?” 훌쩍, 훌쩍, 크흥. 엄마는 물만 벌컥벌컥 들이키며 한숨을 푹푹 쉬셨다. “엄마. 제가 왜 아이 낳기 두려워하는지 아세요? 저 닮아서 너무 예민하고 여릴까 봐, 그래서 저처럼 세상 살기 너무 힘들까 봐 무서운 거예요. 이 두려움을 깨는 방법은 제 마음을 잘 치유하는 수밖에 없어요. 저부터가 살만해져야 ‘아, 내 아이도 살 만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그날 엄마는 우리 집을 나설 때까지도 완전히 마음을 풀지 않으셨다. 나는 속상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후련하기도 했다. 평소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털어놓았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 있는 언쟁이었달까. 엄마 역시 나에게 무작정 화만 내시지는 않았다. 여전히 잔재되어있는 나의 우울한 정서를 걱정하셨고, 내가 마음이 불안하여 의지할 곳이 필요하니 강아지에게 집착하는 거라고 판단하셨다. 의지할 구석은 나 자신과 남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강아지에게 의지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그리도 열심히 설명하였으나 엄마는 믿지 않으시는 눈치였다. 후끈하고도 축축한 엄마와의 대화는 애매하게 끝이 났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우리 딸, 인생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달콩이랑 홍서방이랑 재미있게 지내. 그리고 아빠도 달콩이 궁금하니까 조만간 꼭 보여줘. 알았지? 아빠도 너 나이 때 정말 힘들었어. 이해해. 그러니까 너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말고 살아.” 본래 젊었을 땐 무조건 고생해야 한다 주의인 아빠. 그랬기에 ‘그저 즐겁게 살라’는 그의 말은 마치 사각 얼음들 위에 탄산이 가득한 콜라를 붓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느껴지는 이질감에 놀란 얼음이 타닥타닥 갈라지다가, 이내 얼음이 자연스럽게 녹으며 시원한 콜라가 되는 것처럼. 나 역시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아빠의 마음을 받아들이고는 빠른 속도로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엄마는 그 후 며칠 동안은 연락을 하지 않으셨지만,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근황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한동안 강아지에 대해서는 절대 언급하지 않으시다가, 곧 달콩이 이야기에도 “으이구.” 라고 대답하시게 되었다. 으이구, 라는 세 글자 안에는 참 많은 뜻이 내포되어있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으이구, 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됐다, 됐어!’를 외쳤다.
내가 원하는 것을 가족들도 흔쾌히 인정해주는 건 네잎클로버를 찾는 행운만큼이나 쉽지 않다.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도 원하도록 설득하는 일 역시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우당탕탕 부딪힌 이후에나마 접점을 찾고 마음의 큰 짐을 하나 덜어냈다. 그렇게 참, 어렵게 어렵게 달콩이를 인정받았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부모님이 달콩이를 아주 예뻐하신다. 달콩이를 바라볼 때 그들이 내는 꺄르르 웃음이 그것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