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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Jul 28. 2021

당연하지 않은 안부

 하루를 종일 바쁘게 보낸 어느 날 밤, 널찍한 침대 위에 남편 홍군과 나란히 누웠다. 불을 끄고 스르륵 눈을 감고 몸 안의 세포들도 서서히 잠에 들려할 때쯤 무언가 떠올랐다. 앗, 꼭 해야 하는 걸 놓치고 잘 뻔했네. 이미 반쯤은 잠겨버린 목소리로 홍군에게 물었다.

“여보, 오늘은 별일 없었어?”


 홍군과 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서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아무리 바쁜 날에도, 서로 마주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해도 우리는 꼭 묻는다. 나의 배우자가 오늘 하루 무탈했는지, 힘들진 않았는지, 좋은 소식은 없는지. 매일 저녁 그의 질문을 듣고 나면 그제야 나의 하루를 돌아보곤 한다. 오늘 어땠더라? 하면서. 가끔은 나의 대답이 너무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 아무 일이 없어서 질문에 답할 이야기조차 없는 날. 사실 우리 삶에는 그런 시시한 날이 오히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일상이라는 것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니까. 이럴 때면 우리가 서로에게 하는 질문이 큰 의미가 없는 행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도 놓치지 않고 묻는다. 이 한 문장의 질문이 주는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오늘 정말 별 일이 없었네,라고 대답하면 상대는 차라리 다행이다,라고 받아치곤 한다. 힘든 것보다는 지루한 게 나을 테니까. 별 일은 없었지만 또 이런 일이 있긴 했네, 하면서 소소하게 지나간 일을 떠올리기도 한다. 서로가 다른 공간에서 보낸 하루를 조각조각 편집해서 공유한다. 서로가 보낸 하루의 온도는 다르지만 이야기가 순환되다 보면 중간 온도쯤에서 평형을 이루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이 평범한 질문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때는 역시 힘든 날이다. 누구에게도 먼 털어놓기 어려운 감정이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 상대는 유난스럽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습관처럼 묻는다.

 “오늘은 별일 없었어?”


 하루 종일 참고 있었더래도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취약해지고 만다. "사실…"이라는 단어로 시작하여 뜨거운 이야기들을 속수무책으로 내뿜다 보면 어느새 허공으로 증발해버린다.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화상은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오늘의 이야기를 끌어 나가다 말고, 내가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구나, 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한다. 이건 이거대로 나름의 후련함이 있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힘들긴 한데 명확하게 어떤 것 때문에 힘든 지 갈피가 잡히지 않을 때. 그럴 때 나의 하루를 정리하여 이야기하다 보면 그 원인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와 제일 가까운 사람은 가족일 것이다. 그러나 제일 가까울 거라고 착각하기 가장 쉬운 사람도 역시 가족이다. 당연하게 항상 옆에 있는 그들이라고 해서, 매일이 당연하게 괜찮을 리는 없는 법. 습관적으로 식구들에게 별 일이 없는지 안부를 물어보는 건 어떨까. 그들 속에 농익어있던 감정들이 톡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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