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정 Oct 30. 2021

의젓한 아이의 눈빛은 슬프다

 초등학교에서 방역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는 학교 부속 유치원의 아이들을 맞이하는 업무도 한다. 주로 느지막이 등원하는 친구들의 체온을 재고 교실까지 바래다주는 일이다. 일찍 오는 아이들은 이미 선생님과 함께 반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에, 나는 자주 늦는 몇몇 아이들만 만나게 된다.


 코로나 때문에 부모님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가 없으니 나는 늘 입구 앞에 서서 이별의 순간들을 지켜본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공주님처럼 꾸민 한 여자아이는 새침하고 도도하다. 어머니가 아이를 못 견딜 정도로 예뻐하는 게 눈에 보인다. 아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교실로 향하는데 오히려 어머니가 안절부절못하고 계신다. 또 어떤 여자 아이는 딱 보기에도 무척 명랑한데, 아이의 어머니도 아이를 똑 닮으셨다. 아, 아이가 어머니를 닮았다고 하는 게 순서가 맞겠구나. 어쨌든 어머니가 우렁찬 목소리로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 때면 아이는 이미 노래를 부르며 쪼르르 계단을 뛰어가고 있다. 가끔은 유치원 가기 싫다며 울고 불며 떼쓰는 친구들도 있다. 나는 아이들을 대하는 일에는 영 젬병이라 유치원 선생님께서 아이를 달래며 반으로 데려가신다.


 이 일을 하며 내가 가장 기다리는 순간은 어머니와 함께 등원하는 한 남매를 볼 때이다. 어머니가 오시면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아이들의 이마에 체온계를 갖다 댄다. 이어서 남동생은 가만히 손 소독을 하는데 여자아이는 다시 어머니에게 달려가 안긴다. “오래 걸려도 괜찮으니까 엄마랑 천천히 인사.” 나는 이야기하고서 가만히 기다린다. 이윽고 여자 아이가 들어와 손 소독을 하고 나면, 어머니가 얼른 가라고 손짓을 하신다. 여자 아이는 교실 쪽으로 향하다 말고 다시 뛰쳐나가 어머니를 껴안는다. 어머니는 아이의 등을 토닥토닥거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들어오려다 다시 나가고, 들어오려다가 또다시 나가고. 그게 여러 번 반복되는 동안 남동생도 보채지 않고 묵묵히 그 모습을 본다.

 다른 친구들보다도 훨씬 긴 이별의 시간 동안 세 식구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청각장애가 있으셔서 아주 가끔 수어를 쓰시지만, 대부분의 소통은 모두 눈빛으로 한다. 마스크 때문에 입모양으로 조차도 마음을 전할 수 없는 이 상황에, 나는 어린 여자 아이의 눈빛에 담긴 수만 가지의 감정을 느낀다. 엄마랑 헤어지기도 싫고 떼도 쓰고 싶고 울고도 싶지만 꾹 참는 그 눈빛을. 나는 엄마를 정말로 너무 많이 사랑해,라고 눈으로 말하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그 애틋한 표정을.

 이 남매를 볼 때마다 나는 괜스레 울컥한다. 의젓한 아이를 보면 기특하다는 마음보단 속상한 마음부터 앞선다. 엄마를 보내고 나와 함께 계단을 오를 때도 두 아이는 바닥을 보며 걷는다. 마치 엄마를 떠나보낸 여운을 곱씹고 있는 것처럼.










커버 사진/ 양평 두물머리.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