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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Dec 09. 2021

자, 다시 운동을 시작해볼까?

 올 하반기에는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 유방 종양 절제술도 받았고 코로나 백신도 두 번, 자궁경부암 백신도 한 번 맞았다. 이렇다 할 만큼의 심한 후유증은 없었으나 체력이 급격히 나빠진 게 느껴졌다. 수술이나 주사 핑계를 대 딱 좋은 상황이긴 하지만 어차피 내 건강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올해만큼 운동을 소홀히 했던 해도 없었으니까.


 체력이 아무리 부족해도 정신력만 있다면 뭐든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게 얼마나 우매한 생각이었는지는 그 후 2년 동안 몸소 깨달았다. 아낌없이 써버린 체력은 한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물이 고갈된 뜨거운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모래에 파묻혀 발등이 무거웠다. 한 발자국을 가는 데에도 이전보다 훨씬 더 애써야만 했다. 정신력으로 이겨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수능이 끝난 뒤 친구들이 수험표를 들고 다니며 그 시간을 어떻게 즐길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건 작은 헬스 공간이 딸린 댄스 스튜디오였다. 넝마처럼 너덜너덜해진 나의 몸을 바꾸고 싶었다. 어떻게 사람이 2년 만에 이렇게까지 허약해질 수 있을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모습이었더랬다. 한 달에 얼마를 더 내면 수업을 여러 개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회원권을 등록하여 매일같이 스튜디오에 붙어있었다. 한 시간 반 짜리 재즈 댄스 수업을 두 번씩 연달아 듣고, 수업 전 후로는 작은 헬스장에서 사이클을 타거나 러닝머신을 뛰었다. 씻는 시간까지 더하면 하루에 다섯 시간 정도를 그곳에서 보낸 셈이었다.

 수업 시간의 반 정도는 워밍업을 하고 반 정도는 안무를 배웠다. 워밍업은 말만 워밍업이지 근육이 불타오를 만큼 힘든 운동이 대부분이었다. 다리를 찢을 때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느라 씁,하,씁,하…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나의 고통을 잘 아시면서도 선생님은 옆으로 쓰윽 오셔서 내 다리를 더 찢어주시곤 했다. 순간 내적 비명을 지르다가도, 펼쳐지는 각도가 점점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서 버텼다. 워밍업의 하이라이트인 복근 운동을 할 때면 여기저기서 포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끄으윽, 으아악, 살려주세요, 등등. 어떤 회원은 운동 중에 오바이트를 하러 화장실로 뛰어가기도 했다. 이렇게 힘든 운동을 잘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날이 갈수록 뱃가죽이 딴딴해지는 걸 느꼈다. 하루에도 몇십 번씩 나의 배를 만져보았다. 분명 근육이 그 안에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서는 재등록을 하지 않았다. 신입생 생활을 정신없이 즐겨야 했으니까. 그래도 대학생이 되기 전 한 맺힌 사람처럼 운동했던 경험(과 아빠의 잔소리) 덕에 나에게는 운동하는 습관이 생겼다. 술을 마시고 새벽 1시에 귀가해도 1시간 동안 어떤 운동이라도 해야만 침대에 누웠다. 체계적인 운동까지는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스트레칭을 하고 근력운동을 하고 뛰어다니고 몸을 움직여댔다. 걸어서 왕복 두 시간 거리의 학교까지 매일 걸어서 등하교하기도 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열심히 운동했던 날들.


 그게 과거형이 되어버린건, 4년 전 헬스장에서 스피닝 수업을 들었다가 횡문근융해증에 걸린 날부터였다. 그날도 영혼이 빨려나갈 정도로 운동을 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네 발로 걸어 집에 돌아온 뒤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생애 처음으로 대학 병원에 입원했고, 퇴원 후에도 회복까지 몇 달이 걸렸다.

 로 운동으로부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당연히 근육통이 있어야 근육이 생기는 건데, 운동을 하다가 근육통만 오면 혹시 횡문근융해증에 걸리는 게 아닐까 덜덜 떨었다. 운동할 때 몸을 잘 사리지 않던 나에게는 큰 변화였다. 그 뒤로는 소소한 운동 골라서 했지만,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다가 올해는 기록으로 남겨도 될 만큼 운동을 안 했다. 그래서 몸이 시원찮거나 아플 때마다 생각했다.

 ‘운동을 그렇게 안 했는데 아프게 생겼지 뭐. 아파도 싸다!’

 엄마랑 아빠는 날 볼 때마다 말랐다고 걱정하셨다. 보다 못한 친오빠가 근력 운동을 제대로 배워보라며 PT 비용을 보내주기까지 했다. 그 돈을 받고서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몇 달을 미뤄왔다. 그러나 이제는 미룰 핑계가 없다. 해야만 한다.

 다시 넝마 떼기가 되어버린 몸뚱이로 처음부터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니 살짝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나의 심정을 잘 헤아려보니, 수능이 끝났던 그때의 마음과 비슷한 것 같다. 허약해진 이 몸이 너무나도 싫다. 불타는 운동 열정으로 내 몸을 다시 살려내보고 싶다. 어렸을 때처럼 몇 개월 만에 근육이 생기거나 갑자기 체력이 좋아지는 마법 같은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운동에 빠져들어서 제대로 해내 보려고 한다. 하루라도 운동을 안 하면 몸이 근지러운, 그런 사람으로 다시 돌아 볼란다.



 자, 다시 운동을 시작해볼까.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X-300으로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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