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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Apr 29. 2022

밥은 엄마의 사랑, 기다림, 그리움

난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한다.

진심으로, 좋아한다.


소화 기능이 좋지 않으므로 떤 음식이든 꼭꼭 씹어서 삼키려 노력해야 한다. 먹는 행위 자체에 남들보다 더욱더 집중해야만 탈이 안 난다. 그러니 밥 먹으면서 티비를 본다거나 수다를 떠는 등의 '멀티 플레이'에 능하지 못하다. 아무리 편한 사람과 밥을 먹도, 중간중간 말을 많이 하면 먹던 게 금방 얹혀 버린다. 타인의 식사 속도에 맞추다가 체할 때도 많아서 차라리 일찌감치 포기하고 음식을 남긴다.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점심은 늘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바깥 음식은 자극적일뿐더러, 식당까지의 왕복 시간과 음식 기다리는 시간을 빼면 밥 먹을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챙겨 온 도시락마저 혼자 먹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동료들과 직장 돌아가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지만, 일주일에  번이라도 차분하게 먹는 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백수가 되어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줄곧 혼자 밥을 먹으며 만족했다. 혼자이기에 메뉴를 고르고 밥을 차리는 일은 더 귀찮았지만,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해서 외로웠던 적은 거의 없었다. 소소한 밥상이라도 오물거리며 차분하게 먹으면 1시간이 걸린다. 지루할 시간일랑 없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즐거움, 그걸 모르는 건 결코 아니다. 좋은 걸 먹으면 자연스레 가족들과 친구들 생각이 난다. 신랑과 평일 저녁에 가끔 특식을 사 먹거나 주말에 맛있는 걸 해 먹는 것도 내 일상의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나에겐 한 번씩 혼자 먹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이러니 나는 '진심으로'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 밥 먹는 걸 좋아한다고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유는 엄마가 나의 말을 도통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진짜라니까. 정말이라니까요. 정말 진 혼자 밥 먹는 게 좋다니까요? 아무리 이야기해도 엄마는 "에이, 그래도..." 붙이신다.


에이, 그래도 엄마는 네가 혼자 밥 먹는 게 제일 마음에 걸려. 엄마 밥 먹을 때마다 우리 딸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나, 매일 혼자 밥 먹는데 외롭지 않을까 걱정되고 궁금하고 그래.


엄마의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진짜로'만 몇 번을 외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내 마음을 꺼내보여 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엄마의 끝도 없는 딸 걱정 어찌할 도리가 없다.





엄마의 밥 걱정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엄마수첩 속에서 보았던 글이 각난다. 엄마가 주제 하나를 정해두고 연상되는 것들을 써내려 간 수첩이었데, '밥'이라는 주제 아래 적어두신 글들을 보고 마음이 뭉클해졌었다.


    
<밥>
밥은 엄마의 사랑이다. 기다림이다. 그리움이다. 정성이다. 고단함이다. 사무침이다. 마음이다. 행복이다. 따뜻함이다. 가족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다.

어린 날 매서운 바람 속에 학교 다녀온 뒤 이불속에 꼭꼭 묻어 놓은 밥그릇을 보면 엄마의 품처럼 따뜻했다.

오랫동안 헤어져있던 자식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엄마들은 하나같이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다 한다.
(...)



이 글을 본 뒤로 엄마가 밥을 통 표현하는 사랑에 대해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전화기 너머로 내가 혼자 밥 먹는 게 걱정된다고 말씀하시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러게. 밥은 엄마의 사랑이니까.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내가 오늘 세 끼를 즐겁게 맛있게 든든하게 잘 먹었는지가 가장 궁금하시겠구나.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게다가 엄마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 보니, 나와는 다르게 엄마는 혼자 밥 드시는 걸 쓸쓸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믿지 못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괜찮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드실 때마다 쓸쓸하니까. 우리 딸도 당연히 쓸쓸하겠거니, 그렇게 날 떠올리 것이다.


내가 부모님과 살 적에 우리 집 식탁은 늘 소란스러웠다. 은퇴한 중년의 부부 사이가 의외로 어색한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그에 반해 엄마와 아빠는 어색한 사이가 아니다. 오히려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굳이 공유하다가 의견이 부딪히고, 그래서 자주 티격태격하신다. 마음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일단 대화는 많이 하시는 것이다. 그런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그릇에 코 박고 밥 먹던 나는 "제발 밥 좀 조용히 먹자"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은퇴하신 뒤로 아빠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 몸이 근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며, 아침부터 동사무소니 학원이니 부지런히 나가신다. 집에서 엄마와 아침을 드시지만 점심은 밖에서 사 드신다고 한다. 엄마는 혼자 남아 평화롭게 책 읽고 산책하며 나름대로 그 시간을 즐기시지만, 고요한 식탁에서 혼자 밥 드시는 것만큼은 그리 달갑지 않으신 모양이다. 외식하고 들어오시는 아빠를 향해 가끔 투덜거리시기도 하신단다. 아무래도 엄마는 그동안 정성으로 차린 밥상을 식구들이 떠들썩하게,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마음의 빈틈들을 메워오셨던 것 같다. 그 순간순간마다 통통하게 꽉 찬 마음을 발판 삼아 다음 식탁을 준비하셨나 보다. 삼십여 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내고 텅 빈 식탁에 자신만을 위한 밥상을 차리는 일이 여전히 영 어색하고 썰렁하실 만도 하다.


그러고 보니 엄마의 글이 정말 맞다.

밥은 엄마의 사랑이고, 기다림이고, 그리움이고, 정성이고, 고단함이고, 사무침이고, 마음이고, 행복이고, 따뜻함이고, 가족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다.


이번 주말에는 부모님과 오랜만에 한 식탁에 한데 모여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 평소에도 엄마가 부디 쓸쓸하지 않기를. 혼자서라도 즐겁게, 맛있게, 든든하게 드시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말해도 엄마가 계속해서 나를 걱정하실 때면, 혹시 당신이 힘드신 건 아닌지 잘 살펴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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