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서의 첫 도전과 그 기록

어떤 길이든 결국 목표는 하나

by 온정

얼마 전 처음으로 영상 편집을 의뢰받아서 소소한 돈을 벌었다. 개인적으로는 역사를 새로 쓰기라도 한 듯 신기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내가 밟아온 노선과는 완벽하게 동떨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6년, 목숨 걸고 공부하다.
그 덕에 건강을 망치고 수능도 함께 망치다.
겨우 대학은 들어가 4년 동안 화학 관련 전공.
2년 더 공부하고 석사 학위를 취득하다.
전공을 살려 4년 동안 돈을 벌다.

의 인생 이력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딱 다섯 줄로 끝나버리는구나. 참 별거 없는 것 같은데, 이 경력들을 놓아버리는 일은 왜 이리 별 것인 걸까. 이과행 열차를 선택한 고등학생 2학년 때부터, 얼마 전 퇴사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매일같이 고민했다.

'정녕 이 길 밖에 없는 걸까. 다른 열차를 타기엔 이미 늦어버린거겠지? 하긴,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가던 길이라도 열심히 가야지.'

결국 10년 전에도, 그리고 10년이 지난 뒤에도, 동일한 이유로 나는 한 종류의 열차만 탄 채 흘러갔다. 가끔 열차가 정차해도 그저 창문을 통해 바깥세상을 두리번거릴 뿐. 열차가 다시 출발하면 제자리로 돌아가서는 덜컹덜컹 흔들리는 열차에 몸을 맡겼다. 가끔 '아까 거기 재미있어 보였는데. 한 번 내려볼걸 그랬나...'라며 후회하기도 했지만, 행동으로 옮길 용기는 없었다.

그러던 내가, 그동안의 멀미와 고단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 간이역에 덜컥 내려버렸다. 그리고는 그곳에 펼쳐진 새로운 풍경에 푹 빠졌다. 분명 잠깐만 내렸다가 다시 타려고 했는데, 왜 이리도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걸까. 내가 타던 ‘A호 열차’가 종종 란하게 내 앞을 지나갔지만 나는 그 열차를 다시 타지 못했다. 렇게 승강장에 우두커니 서서 고민만 하던 나는, 침내 철로를 등진 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간이역의 문을 열고, 한 발자국. 딱 '한 발자국' 만큼, 앞으로 나아갔다.



몇 년 전부터 영상 편집을 배우고 싶어 하다가, 드디어 작년부터 독학을 시작했다. 직접 해보니 놀라울 만큼 재미있고 또 적성에도 잘 맞았다. 평생을 취미 부자로 살아왔다만, 돈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취미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영상 편집은 조금 달랐다. 요즘은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영상 콘텐츠가 쏟아지고, 그 콘텐츠들이 이 시대를 이끌어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영상 편집자를 찾는 수요도 늘어나고 있기에 '나도 그 일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 관련 정보들을 알아보았다. 그렇게 프리랜서 마켓 가입했고, 다양한 형태의 편집을 연습하고 나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그 후 마켓에 나의 샘플 영상들을 첨부하여 판매 서비스를 신청했다. 다행히 한 번에 승인 연락을 받았다. 이제 정말 나의 재능을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얼떨결에 받게 된 첫 의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서툴렀다. 편집 자체가 서툴렀다기보단 내가 의뢰인에게 어떤 정보를 요청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의뢰받은 내용을 효율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지를 몰랐다. 처음 상담을 한 뒤 보낸 견적은 70,000원. 마켓 수수료를 제하면 56,000원이었다. 난이도 ‘중’ 정도로 보이기에 할인해서 견적을 냈건만, 막상 닥쳐보니 기술보다는 소통이 더욱 중요했다. 충분한 소통 없이 무작정 시작해버리고 나니 결국 수정 과정까지 포함하여 장장 16시간이 넘게 걸렸다. 일이 있으면 잠도 못 자는 예민한 성격 탓에 새벽 5시까지 붙들고 있다가 수정본을 보냈다. 지릿하게 아파오는 눈을 감싼 채 컴퓨터 전원을 껐다. 침대에 누우니 굳은 어깨가 매트리스에 뻣뻣하게 닿았다. 순간 어이없게도 전공 관련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구직 활동을 다시 적극적으로 해봐야 하나...'


난 머리를 세차게 도리도리 젓다가 급히 잠을 청했다. 겨우 첫 도전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 덕스럽게 느껴졌다.



몇 시간 눈을 붙인 뒤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수영장에 갔다. 다소 차가운 물에서 헥헥거리며 수영을 하고 나니 딱딱했던 어깨 근육이 말랑해졌다. 제야 머릿속이 개운해지면서 실감이 났다. 내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처음으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생각해보니, 처음이니까 당연하게 겪는 일들이잖아? 비록 힘든 경험이었지만, 그게 다 ‘배우는 값’이었던 거야.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다음에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겠지. 시급이 삼천 원이고 백 원이고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새로운 분야에서 수익을 낸 게 대단한 거지!’

뒤늦게 뿌듯함이 밀려왔다. 퇴사를 한 뒤로 오랜만에 내 힘으로 돈을 벌었다. 56,000원. 16시간을 고생해서 번 돈이라고 생각하면 보잘것없지만, 나에게는 정말이지 큰 의미를 가지는 첫 수익인 셈이다. 내 프로필에 공개된 작업 개수가 0개에서 1개로 늘어난 것도, 또 별 다섯 개의 평점을 받은 것도, 결국 돈으로는 절대 환산할 수 없는 나의 자산으로 남았다.



그렇게 ‘이미 가고 있던 길’과 ‘새로운 길’. 그 앞에서 한참을 쭈뼛거리던 나는 결국 새로운 길에 한 발자국을 들여놓았다. 지금까지 지나온 길의 거리를 따져본다면, 한 발자국 정도는 ‘도전’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심지어 마음만 먹는다면 다시 뒤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전공 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한다. 지인들에게 "나 결국 현실에 굴복하고 다시 화학 회사에 취직했어."라고 얘기하는 상상. 내 말을 듣고서는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지인들의 모습까지 머릿속에 훤하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지금 현실이 너무나도 불안정하기에 그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첫 수익이 생긴 이 시점으로부터 ‘이 일을 조금 더 지속해 볼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한 발자국 뗀 것만으로도 이미 지나온 길이 까마득하게 멀어진 듯한 느낌이랄까. 그와 동시에 내 어깨에 용기가 한 뼘 더 자라난 것만 같다.



좀 더 글쓰기에 집중하고 싶어서, 하던 일이 도저히 맞지 않아서, 또 경쟁 사회에서 항복을 외쳤기에(프리랜서라고 경쟁 사회가 아니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나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여전히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나의 방황.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방황을 하면 할수록 또렷해지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고, 또 어떤 일을 선택하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라는 사실.


만일 이 도전의 끝에서, 직장을 다시 다니는 것이 글쓰기를 병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한다면 나는 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 것이다. 영상 편집 역시 나의 여행 에세이를 알리기 위해 시작한 미이기에, 이 일로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나는 지속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프리랜서로의 시작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흘러가든 그 목표만은 잃고 싶지 않다.

자, 일단 지금은 두 번째로 의뢰받은 영상 편집을 하러 가봐야겠다. 처음보다는 조금 더 발전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관련 글

경쟁사회에서 항복을 외치다

쓸모 있는 인간

커버 사진/ 필름 카메라 OLYMPUS PEN EE-3, 남편 찍다.


+

한 치 앞도 모르는 저의 방황을 매번 브런치에 공유하고 있네요. 결국 어떤 식으로 방향을 잡게 될지, 저도 저의 앞날이 궁금합니다. 오늘도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에게도 에코 모드가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