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까 말까 고민했었지만 가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나니 마치 처음부터 고민은 없었던 것처럼 당장 그곳으로 날아가고 싶어졌다. 이스탄불(İstanbul)은 11년 만이었다. 그 사이, 이 거대한 도시가 속한 나라는 국호를 튀르키예(Türkiye)로 고쳐 달았고 하기아 소피아*는 모스크로 회귀해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2023년의 이스탄불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는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 시대에 건설된 동방 정교회의 성당이었으나 이후 이스탄불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로마 가톨릭교회 성당, 모스크, 박물관으로 쓰임이 변하다가 2020년에 다시 모스크가 되었다.
이스탄불 풍경
동서양의 가교 위에 세워진 도시, 이스탄불
이스탄불을 위한 수식어는 많다. 하지만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이라는 말이 아닐까? 정말로 이 도시는 마르마라 해(海)와 흑해(黑海)를 연결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 두 대륙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 아시아 입장에선 서쪽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발판이요 유럽 입장에서 보자면 동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할 길목이었으니 이 황금과도 같은 땅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긴 세월 이어져 왔던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에서 탐내는 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었겠지만 다행히 아나톨리아 초기 문명부터 히타이트 제국, 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을 거쳐 현대의 튀르키예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화가 부딪히고 어우러진 결과, 찬란한 문화가 피어났다. 그리고 그 흔적을 좇아 모여드는 이들로 이스탄불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오랜만에 발걸음을 하는 김에 주변 지역들까지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 먹고 4박 5일을 온전히 한 도시에 바치기로 했다. 지난 여행에서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위주로 둘러보고 관광객들에게 덜 알려진 동네도 느긋하게 산책하며 이스탄불을 즐겨보기로 한 것이다. 강산마저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으니 오랜 과거를 품고 있는 이 도시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었다. 출발을 앞두고 나는, 그동안 새롭게 생겨난 공간은 없나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이스탄불을 넘어 튀르키예의 랜드마크로 떠오르고 있는 도서관과의 첫 만남이었다.
라미 군사기지
잠시 과거로 여행을 떠나보자.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의 수상이었던 라미 메흐메드 파샤(Rami Mehmed Pasha)는 황제인 술탄으로부터 지금의 이스탄불 북서쪽 유럽지구에 터를 잡은 에윱(Eyüp) 지역의 땅 일부를 선물 받는다. 오스만 제국 초기 정착지 중 하나였던 에윱은 군사적 요지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 지역에 자리한 라미 파샤의 땅이 18세기 중 후반에 이르러 군사기지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술탄들의 근교 여행지이기도 했고 후에 단지 안에 과학센터가 들어서는 등 다른 용도로 쓰이기도 했지만 1960년대가 저물 때까지 이곳의 주 역할은 군사기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군사시설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 1980년대부터는 주차장, 축구장, 식품 창고 등으로 활용되었다.
이 역사 깊은 공간의 운명이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10년의 일이었다.
(좌)튀르키예의 높은 교육열을 보여주듯 열람실은 공부하는 이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우)어린이들을 위한 워크숍, 게임 등이 진행되는 공간
군사시설에서 문화시설로, 라미 도서관
지난 2010년, 이스탄불은 유럽문화수도(European Capital of Culture)로 선정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라미 군사기지를 도서관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2023년 1월, 라미 도서관(Rami Kütüphanesi, Rami Library)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뻔했던 군사시설이 문화시설로 재탄생하여 다시금 튀르키예인들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직접 만난 도서관은 여러모로 인상적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자 전 유럽에서도 가장 큰 도서관 단지라더니 과연, 크기부터 어마어마했다. 약 7백만 권의 도서를 소장할 수 있다는 내부 공간 면적은 36,000m²에 달하며 최대 4,200명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건물은 가운데에 정원을 두고 그것을 사면으로 둘러싼 직사각형 회랑 형태인데 정원 또한 51,000m²에 이를 정도로 넓다. 더현대서울의 전체 영업면적(약 89,100 m²)과 비교해 보면 이곳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쉽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성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다. 라미 도서관 건설 프로젝트는 역사 공간 보존, 자연과의 공생, 그리고 문화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고려한 공간 디자인부터 실제 공사 진행 시 활용된 기술과 개관 이후의 운영 방식에 이르기까지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다 한다. 그 결과 라미는 튀르키예 최초로 바이오스피어 지속가능 박물관 인증(Biosphere Sustainable Museum Certificate)을 획득한 도서관이 되었다.
도서관은 가운데에 정원을 두고 그것을 둘러싼 직사각형 회랑 형태를 띠고 있다. 사진 아래쪽이 라미 도서관 모형이다.
도서관 내부는 과거, 라미 군사기지의 모습을 반영하여 복원했다고 한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
라미 도서관과 정원은 연중무휴 운영되며 일부 열람실은 24시간 개방된다.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는 전 연령대 이용자들을 위한 공간이 각기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도서관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각각의 놀이공간 또는 열람실에는 타깃 이용자에 맞는 도서와 정기간행물을 비롯한 온오프라인 자료가 준비되어 있으며 각 연령대 이용자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워크숍 등도 지속적으로 열린다. 그중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열람실과 대입 수험생용 열람실이 특히나 눈길을 끌었다. 튀르키예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튀르키예도 한국처럼 교육열이 매우 높다고 한다. 그러므로 고등학교나 대학교 입학시험 같은 각종 시험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당연지사. 학업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 비치된 열람실이 빈자리 하나 없이 공부에 열중하는 앳된 얼굴들로 가득했다는 사실은 이 나라의 높은 교육열을 반영한 현상인듯했다.
벽면을 따라 걸린 아타튀르크의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던 아타튀르크 도서관
라미 뮤지엄과 전시장의 규모는 작지만 둘러볼 만하다.
정원 안 카페에서는 군사시설에서 문화시설로 재탄생한 라미의 과거를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다.
열람실 외에도 눈여겨볼만한 공간들이 많았다. 첫째로는 아타튀르크 특별 도서관(Atatürk Special Library)을 꼽고 싶다. 세상을 떠난 지 80년 이상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튀르키예의 아버지’로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튀르키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그의 이름을 딴 이곳은 튀르키예 사람들에게는 분명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장소일 것이다. 여기에는 아타튀르크의 생애와 튀르키예 공화국의 역사, 문화, 언어 등과 관련한 2만 점 이상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필사본도서관(Manuscripts Library)과 생물화학연구소(Biology and Chemistry Laboratories)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자는 역사, 지리, 문학, 의학, 천문학, 논리학, 음악, 이슬람 과학을 아우르는 자료를 보유하며, 이는 후자가 담당하는 도서관이 보유한 고서(古書)와 옛 문서 복원작업과 맞물려 선대의 지식을 후대로까지 전달하겠다는 사명을 실천한다. 튀르키예의 역사,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라미 뮤지엄(Rami Museum)과 전시장(Exhibition Hall)도 규모는 작지만 둘러볼 만하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은 중앙 정원이었다.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는 실내와는 전혀 다른 풍경과 만나게 된다. 좌로 보고 우로 보아도 눈에 담기는 것은 청량한 초록. 작은 호수와 언덕 사이로는 의자며 테이블이 놓여 있고 널따란 잔디밭에 담요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얼굴들 곁으로는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뻗어 있었다. 어린이 놀이터와 정기적으로 이벤트가 벌어진다는 공연장, 작은 도서관을 연상시키는 따뜻한 분위기의 카페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살아 숨 쉬는 도서관
실내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터라 정원의 푸르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부실 정도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팔을 살짝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전 도서관 안에서 만난 튀르키예 소녀들이었다. 라미 도서관을 구경하기 위해 이스탄불에 놀러 왔다는 아이들은 나에게 큼지막한 쿠키 상자를 내밀었다. 계속해서 권하길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며 쿠키 한 개를 집어 들었다. 이어, 아이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우리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는 아이들의 엄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관 첫 주, 16만 5천 명이 라미 도서관에 다녀갔다고 한다. 지역 주민뿐 아니라 타지방에서 찾아온 이들까지 포함한 숫자란다. 이 공간에 대한 튀르키예인들의 기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라미 도서관은 시설적인 면에서도 놀라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또렷해지는 것은 무생물로 만들어진 그곳을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다가오게 만들었던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많은 것이 디지털화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식의 축적과 교류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공부하는 이들과 한낮의 휴식을 즐기는 이들이 발산하는 활기로 가득했던 라미 도서관. 이 역사 깊고 아름다운 공간이 지닌 건강한 에너지는 오래도록 나의 마음에 남아있을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