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주의 주도인 베네치아에서 기차로 30분, 자동차로 1시간 남짓 떨어진 거리에 파도바(Padova, Padua)라는 도시가 있다. 이탈리아의 가장 대표적인 관광지 목록에서는 살짝 비켜난 곳이다. 도시 자체의 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국토 전역에 걸출한 관광지가 많다는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지역이라는 것이 옳은 설명일 것이다. 내가 파도바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흔적을 좇아 베네토주의 여러 도시를 방문했던 배우자의 제안 때문이었다. 그즈음 마침 너새니얼 호손의 「라파치니의 딸」을 읽고 있었는데 소설의 배경이 파도바라는 사실도 운명처럼 느껴졌다. 찾아보니 한때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였던 이 도시는 기대 이상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었다.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성 안토니오 대성당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조토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스크로베니 예배당,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세계 최초 대학 부설 식물원까지 이 도시에 터를 잡고 있었다. 게다가 식물원이 속한 파도바 대학교는 이탈리아에서는 두 번째로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이자 전 세계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역사 깊은 학술기관이라는 게 아닌가. 오래전에 설립된 대학에는 분명 긴 역사를 자랑하는 도서관도 있을 터. 여행지에서 도서관을 방문하는 취미가 있는 난, 당장 이 낯선 도시로 떠나고 싶어졌다.
파도바는 도시 자체의 매력도 넘치는 곳이다. 사진 속 장소는 1545년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대학 부설 식물원
오래된 젊은 도시, 그리고 파도바 대학교
그렇게 찾아간 파도바의 거리에는 차분하면서도 지적인 분위기, 그리고 젊음이 발산하는 활기가 공존하고 있었다.인구 21만 명가량의 도시에 파도바 대학교 학생만 6만 명이 넘는다니 당연한 일이다. 오래된 돌길과 건물들은 분명, 지난 세월 동안 이 거리를 거쳐간 수많은 얼굴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로는 오늘날의 학생들이 생생한 활기를 덧입히고 있었다. 그러니 여기, 파도바만큼 오래되었으되 젊은 도시를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의 느릿한 발걸음이 향한 곳은 파도바 대학 도서관(Biblioteca Universitaria Padova). 그러나 도서관을 소개하기에 앞서 잠시 파도바 대학교(Università degli Studi di Padova)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은 이탈리아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 대학교에서 건너온 이들이 1222년에 세운 학교다. 설립연도만 듣고도 입이 떡 벌어졌지만 파도바 대학교는 단순히 오래전에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유명해진 곳이 아니었다. 무려 800년 동안이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학풍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수혜를 받기 위해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각지에서 능력 있는 이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파도바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학문적 성공을 거두었고 근대 해부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도 고향인 벨기에를 떠나 이곳에서 교편을 잡았다. 또한 지동설을 주장하며 근대 자연과학의 대변혁을 이끈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도 동문 중 한 명이라고 하니 학문의 중심지로서의 파도바 대학교의 역사가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요란하지 않고 단정한 파도바 대학 도서관의 입구
파도바 대학 도서관
길을 조금 헤맨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골목에 자리한 평범하게 낡은 건물이었다. 그곳은 길 가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로 요란한 이름표도 내걸고 있지 않았기에 문 옆에 소박하게 새겨진 파도바 대학 도서관이라는 글자를 보지 못했더라면 자칫 그냥 지나쳐 버릴 뻔했다. 혹시나 학교에 소속된 학생이나 교수들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아닐까,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뒤늦은 걱정을 했으나 다행히 이곳엔 파도바 대학교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이들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여행자였던 우리는 여권으로 간단한 신분확인 과정을 거치고 리셉션 옆 캐비닛에 가방을 넣은 후 도서관으로 들어섰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도서관
1629년, 베네치아 공화국 시절에 문을 연 파도바 대학 도서관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도서관이다. 다만, 400년이 다 되어가는 기간 동안 도서관이 줄곧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관 당시에는 예수회 수도원에 터를 잡고 있었으나 1631년에 거인의 방(Sala dei Giganti)으로 자리를 옮겼다. 14세기 파도바의 영주였던 다 카라라 집안의 거주지였던 카라레시 궁전(Palazzo dei Carraresi) 안의 이 홀(hall)은 오늘날에는 파도바 대학교 건물 중 일부로 음악회나 낭독회와 같은 문화행사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도서관이 다시 한번 자리를 옮긴 것은 1912년의 일이었다. 개관 이후, 파도바 대학 도서관은 지식의 저장고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온 것으로 보인다. 베네치아 공화국 통치 아래 있던 시기, 공화국 영토 안에서 인쇄되는 모든 문서의 사본을 모아 도서관에 저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파도바 대학을 거쳐 간 수많은 학자들이 수집한 도서들까지 도서관으로 옮겨오면서 파도바 대학 도서관은 장서의 깊이와 넓이를 계속 확대해 왔다. 그러던 중 공간에 비해 보유하고 있는 자료의 규모가 너무나도 방대해졌고 결국 새로운 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파도바 대학 도서관의 오늘, 그리고 보물들
오늘날 파도바 대학 도서관은 건물 내외부 모두 과도하게 꾸미지 않은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현란한 디자인으로 이용자들의 혼을 빼놓는 게 아니라 본연에 충실한 공간이라고나 할까. 알고 보니 이곳은 이탈리아 통일 이후 도서관으로 활용될 목적으로 지어진 첫 번째 건물이라고 한다. 열람실의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그 공간을 메운 커다란 책장에는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의 손끝을 거쳐온 듯 책등이 다 벗겨져 제목조차 읽기 힘든 책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 그 앞에 서서 나보다 먼저 이곳을 방문했을 과거의 수많은 이들을 상상해 보았다.
책등이 다 벗겨져 제목조차 읽기 힘든 책들 앞에 선 나는 나보다 먼저 이곳을 방문했을 과거의 수많은 이들을 상상해 보았다.
도서관에는 귀중한 자료들도 다수 소장되어 있다 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편찬, 반포한 로마 법대전 내용 일부를 포함한 12세기 전반의 자료부터 전 세계에 오직 10권만 존재한다는 1471년에 파도바에서 인쇄된 첫 번째 도서, 17~18세기에 인쇄된 의학, 천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들, 그리고 셰익스피어 사후인 1623년 런던에서 인쇄된 그의 퍼스트 폴리오까지, 파도바 대학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무려 80만 점 이상에 이른다니 그 규모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파도바 대학 도서관도 많은 부분에서 전자화가 되었다지만 곳곳에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어 반가웠다.
열람실에 비치된 의자와 책상마다 마르코 성인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가 새겨져 있었다.
파도바 대학 도서관의 내일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다가 문득, 열람실에 비치된 의자와 책상마다 같은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마르코 성인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였다. 그러고 보니 마르코 성인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였던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 아닌가. 시간이 흐르고 장소는 옮겨져 왔으나 전통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파도바에 대학이 처음 들어서고 그곳에서 학문을 갈고닦을 이들을 위해 도서관이 문을 연 날로부터 수백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도서관도 부침을 겪으며 오늘날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 속에서도 파도바 대학 도서관은 한결같이 지식을 갈구하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장이 되어주고 있다. 여전히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파도바 대학 도서관이 지금으로부터 수 세기 후까지도 전통을 이어가며 더 많은 이들에게 오아시스와 같은 공간이 되어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