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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도서관 기행]텔아비브 미술관 도서관

이스라엘 텔아비브 <텔아비브 미술관 미술도서관>

by 여행하는가족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종교와 무관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까지 신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게 만든다.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를 잇는 이 땅이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성지를 두루 품은 곳이자 오랜 세월 종교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잠시만 눈을 돌려 보자. 오늘날의 이스라엘은 종교를 논외로 하더라도 시선을 끌 이유가 충분한 곳이니까.


메어 디젠고프(Meir Dizengoff)와 텔아비브 미술관(Tel Aviv Museum of Art)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 속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실질적 수도 역할을 담당하는 텔아비브(Tel Aviv)는 유럽의 분위기를 더 짙게 풍기는 도시다. 지중해를 따라 펼쳐진 해변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이들이 가득하고 골목마다 둥지를 튼 개성 넘치는 카페며 상점들은 길 가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축제가 벌어지는 날도 아닌데 거리는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힙한 차림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주변으로는 무성한 잎을 거느린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지만, 사실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텔아비브는 불모의 사막이었다. 그 메마른 땅에 도로를 깔고 물을 대고 집을 지어 도시를 일궈낸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이 도시의 초대 시장, 메어 디젠고프(Meir Dizengoff)였다.


20세기 초 텔아비브의 풍경. 오늘날의 텔아비브를 본 이들은 이곳이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것이다.(C)Tel Aviv Museum of Art Archive


사회적 성공을 맛본 그에게도 아픔은 있었다. 갓 태어난 외동딸을 잃고 나중에는 사랑하는 아내마저 먼저 떠나보내야 했던 디젠고프. 헤아릴 수 없었을 슬픔을 딛고 그는 자신의 집을 텔아비브 시(市)에 기증하기로 결심한다. 예술을 사랑하던 아내를 추억하며 부부의 삶이 어린 공간을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켜, 오랜 세월 동안 애정을 쏟아 키워낸 도시에 선물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독립을 선언하기도 전인 1932년 4월 2일, 이 나라 최초의 미술관으로 일컬어지는 텔아비브 미술관*이 탄생한 이야기다.


*설립 초기부터 1989년까지는 텔아비브 박물관(Tel Aviv Museum)으로 불렸으나 이후 텔아비브 미술관(Tel Aviv Museum of Art)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텔아비브의 최초 시장이었던 메어 디젠고프의 집을 미술관으로 개조하기 위해 그렸던 스케치 원본 (C)Tel Aviv Museum of Art Archive
텔아비브 미술관 설립 당시 모습. 이스라엘 최초의 미술관인 이곳에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언했다.(C)Tel Aviv Museum of Art Archive


근현대 미술을 중점적으로 다뤄온 텔아비브 미술관은 매년 1백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에서 이스라엘 작가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곳으로 유명하지만 비(非) 이스라엘 작가들의 작품 또한 상당수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구입 또는 기증을 통해 작품 수를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미술관이 처음부터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장품이 늘고 그 중요성이 더해감에 따라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고 그리하여 1971년, 지금의 자리에 더 큰 규모의 건물을 지어 옮겨오게 된다.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한 장소이기도 했던 최초의 미술관 건물은 이제는 이스라엘 독립기념관(Independence Hall)으로서 방문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헤르타 앤 폴 아미르 빌딩은 파사드는 물론이거니와 내부의 구조마저도 심미적으로 아름다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선사한다.


텔아비브 미술관은 폴슨 패밀리 파운데이션 빌딩(Paulson Family Foundation Building)을 중심으로 헤르타 앤 폴 아미르 빌딩(Herta and Paul Amir Building), 조각공원(Sculpture Gardens), 그리고 이 셋과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에얄 오퍼 파빌리온(The Eyal Ofer Pavilion)으로 구성되며, 이 중에서 헤르타 앤 폴 아미르 빌딩은 파사드는 물론이거니와 내부의 구조까지도 심미적으로 아름다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선사한다. 하지만 공간마저 예술적인 이 멋진 미술관에서 반드시 둘러봐야 할 장소는 갤러리뿐만이 아니다. 디젠고프가 강조했듯, 이곳의 존재 이유는 예술작품의 전시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 교육과 발전을 꾀하고 그러한 자극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곳, 그곳이 바로 이스라엘 미술의 중심, 텔아비브 미술관이다.


텔아비브 미술관의 미술도서관


미술도서관(Art Library)

그런 의미에서 텔아비브 미술관에서 반드시 방문해 볼 가치가 있는 장소는 미술도서관이다. 이곳은 예술 관련 자료들을 다루는 미술 전문 도서관이자 이스라엘을 통틀어 손꼽히는 예술 정보 센터로서의 역할까지 담당하는 곳이다. 현대적인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최초 설립 연도는 1938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나라에 첫 번째 예술대학이 문을 연 시기보다 무려 30년가량을 앞서 탄생한 예술 관련 기관이라는 의미다. 국내외의 특색 있는 도서관을 찾아 둘러보는 것을 즐기는 나에게 미술도서관은 텔아비브 미술관만큼이나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 입구에 있는 메어 아리슨 미술관(Meir Arison Art Library)이라는 푯말이 내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았다. 알고 보니 지금의 텔아비브 미술관 미술도서관은 아리슨 가족 재단이 메어 아리슨이라는 인물을 추모하며 기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세워진 곳이라는 의미였다. 이 공간은 물론이거니와 텔아비브 미술관에 소장된 많은 작품들이 이스라엘 안팎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기증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들로 하여금 기부를 이어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미술도서관


내부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키 큰 서가가 줄지어 서 있고 왼편으로는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테이블과 컴퓨터가 놓인 공간이 있다. 아래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어 내려가 보니 그곳에도 책이 빼곡하게 꽂힌 서가가 숲을 이루고 있다. 도서관이 아주 넓지는 않지만 소장자료는 풍부하다. 순수 미술뿐 아니라 사진, 건축, 디자인, 나아가 미술 교육에 이르는, 그야말로 시각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를 다루는 10만여 권의 도서와 더불어 90여 종의 인쇄 잡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자 잡지와 멀티미디어 자료 또한 다수 비치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2010년 이후에 발간된 자료는 도서관 웹페이지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아직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예술가들에 관한 내용이지만 지속적으로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니 머지않은 미래에 더 다양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접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미술도서관 내부에는 작가들과 학생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도서관에 소속된 이스라엘 미술문헌센터(Israeli Art Documentation Center)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1977년에 설립된 이곳은 이스라엘의 예술과 예술인들, 그리고 예술기관들과 관련된 실물 및 디지털 자료들을 모아 제공한다. 센터는 192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활동해 온 약 7,300명의 이스라엘 작가들에 관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내용 또한 기사, 전시회 초대장, 작가에 대한 코멘트 등으로 다양하다. 미술 전문 도서관인 만큼 이용자들 대부분이 미술과 연관된 직업을 가진 이들이나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 또는 연구자라 했다. 그러나 미술도서관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미술관 입장료에 도서관 이용료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텔아비브 미술관을 방문했다면 도서관도 함께 둘러보기를 권한다.


텔아비브 미술관의 아카이브


아카이브(Archive)

미술도서관과 연계하여 방문해 볼 만한 또 다른 장소는 아카이브다. 이스라엘의 <아카이브 법(The Archives Law, 1955)>에 의거, 운영되는 이 기관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사전에 면담 예약이 필요하다는 말에 필자도 이 공간의 책임자인 마야 간츠비(Maya Gan-Zvi)씨와 약속을 한 후 찾아갔다.


필요한 자료 목록을 미리 전달하고 방문하면 아카이브에서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다. (C)작가 Raffi Lavie, 전시장 사진 Ran Erde


아카이브는 메어 디젠고프가 미술관 설립 아이디어를 냈던 1929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 생성된 텔아비브 미술관과 관련한 모든 활동자료를 보관하고 그것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담당한다. 소장 자료는 전시회 초대장과 포스터, 전시 작품 목록과 전시장 설계도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그 양 또한 실물 약 2백만 점, 디지털 자료 수천 점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이런 까닭에 원하는 것을 현장에서 바로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살펴보고 싶은 자료의 목록을 미리 이메일로 전달한 후 방문한다면 아카이브에서 더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참고로 극비로 분류된 것들을 제외하고는 생성된 지 15년이 지난 자료는 원칙적으로 모두 공개가 가능하다.


글을 마무리하며, 죽음을 앞둔 디젠고프가 텔아비브 시민들에게 남겼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저는 제 삶의 많은 부분을 텔아비브를 위해 바쳤습니다. 이제 작별을 고하며 여러분께 텔아비브 미술관을 넘겨드립니다. 정성껏 관리해 주세요. 그것은 지금보다 더 큰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리의 도시에 영광과 영예를 선사할 테니까요."


텔아비브 미술관



[기고처] 월간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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