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하는가족 Feb 26. 2024

너무나도 이상적인 행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정덕애 옮김), 민음사

『다섯째 아이』 도리스 레싱(정덕애 옮김), 민음사


행복한 삶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자신이 꿈꾸는 것이 얼마나 맹목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미리부터 깊이 생각해 보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두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타인들에 비해 다소 전통적인 생각과 태도를 가진 해리엇과 데이비드는 서로가 인생의 동반자라는 사실을 첫눈에 알아본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은 자연스레 결혼으로 이어진다. 결혼 직후 젊은 부부는 호텔로 사용해도 될 만큼 거대한 저택을 덜컥 구입한다. 적어도 여섯 명의 자녀들이 해맑게 뛰어놀며 자라고 계절마다 일가친척과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해 흥겨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그 집만큼 어울리는 공간이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자신들의 벌이를 생각하면 심사숙소해야 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이 무모한 계획을 밀어붙인 데에는 데이비드의 아버지이자 상당한 재산가인 제임스가 그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었다.


여하튼 그들의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건강하고 예쁜 자녀 넷이 줄줄이 태어났고 거대한 저택은 부부가 꿈꾸던 대로 매 계절 사람들로 가득 찬 행복의 중심지가 된다. 그야말로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그렸던 이상적인 행복의 퍼즐이 하나하나 맞춰져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복권 추첨에서 무엇이 나올지를 선택할 수 없듯이 아기를 갖는 일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러나 행복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과연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연속되는 임신과 출산이 조금씩 힘에 부치기 시작할 무렵, 해리엇은 다시 한번 임신을 하게 된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로 인해 집안의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남달랐던 다섯 번째 아이는 태어난 이후에도 쉽게 정이 가지 않는 외모와 성향을 지닌 데다 자신의 힘과 포악성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단박에 두려움의 대상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상적인 배우자, 이상적인 집, 이상적인 자녀들과 함께 하는 행복한 미래만을 상상했던 부부는 꿈꾸던 삶으로부터 점차 멀어져 가는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나머지 네 아이들은 하나, 둘, 부모의 곁을 떠나가고 함께 있었지만 어쩌면 단 한순간도 진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을 다섯째 아이도 그들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결국, 해리엇과 데이비드마저 서로의 곁을 비우고야 만다.


“잘난 척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해야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행복해서…”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까닭에 그 누구도 다른 이가 정의 내린 행복을 허상이라는 단어로 폄하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이상적인 행복은 아주 작은 균열조차 허락하지 못한 채 그것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깨달았다. 어쩌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생길 어디에서라도 내가 계획한 미래와 부합하지 않는 일을 맞닥뜨릴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닐까? 실제로 그런 일이 닥쳤을 때 화가 나고 당황스럽지 않을 리야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곁에 있다면 우리는 느리게나마 암울의 터널을 헤쳐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책에서 발췌한 부분은 파란 글씨로 표기하였습니다.

이전 15화 내 안의 또 다른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