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것이 완전히 배제된 삶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만끽하는 양방향의 사랑이든, 지나간 날들의 사랑을 복기하거나 혹은 미래의 어느 순간을 기대하며 쌓아가는 한 방향의 사랑이든, 그 어떤 형태로든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십 대 후반에 발표한 첫 소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Françoise Sagan, 1935. 6. 21. ~ 2004. 9. 24.)이 이십 대 중반에 쓴 소설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내일모레 사십을 바라보는 폴. 한 번의 결혼과 이혼 후 육 년째 동년배 연인인 로제와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던 그녀 앞에 어느 날, 스물다섯 살의 아름다운 청년, 시몽이 나타나고 그녀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폴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더 사랑하는 듯 보이는 로제는 폴과의 관계를 이어 가는 동시에 때로는 다른 여자들과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폴은 이러한 상황을 짐작하고 그와의 관계에서 권태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로제를 향한 자신의 감정과 이미 익숙해진 둘의 관계를 무 자르듯 단칼에 잘라버릴 수가 없다. 반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도 좋게 말해 순진무구한 시몽은 꾀부리지 않는 자세로 폴을 향한 솔직하고도 헌신적인, 그리고 때로는 맹목적으로까지 보이는 사랑을 한다. 서른아홉 폴에게는 그런 시몽이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소년으로 보일 뿐. 하지만 저돌적인 시몽이 때로는 불편하면서도 그에 대한 관심이 싹트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소설을 통해 이십 대의 젊은 사강은 로제와 시몽, 완전히 다른 두 남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폴의 마음을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오늘 6시에 플리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19세기 독일에서 활동했던 작곡가였던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인정해 주었던 친구(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이자 그녀 스스로도 훌륭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을 평생에 걸쳐 사모했다. 그들의 관계가 결혼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브람스는 평생 독신생활을 하면서 클라라 슈만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었다고 하는데 클라라가 슈만보다 열네 살이 많았다고 한다. 그 둘의 관계에서 자신과 폴의 관계를 발견한 시몽은 폴에게 묻는다.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이 질문에 폴은 무어라 답할 수 있었을까? 그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읽는 순간 아! 소리가 터져 나오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만, 아니,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말로 사랑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갈팡질팡, 알 수 없는 마음이여. 140페이지 남짓, 그다지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이고 기본적으로는 연애 이야기이니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건만 나는 이 책을 다 읽는 데 며칠이나 걸렸다. 너무나도 재미있었지만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너무나도 현실적인지라 종종 가슴이 죄어오듯 싸하게 아팠고 때론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했기 때문에 쉬엄쉬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짧지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