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달 가까이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짚으로 된 매트 위에 누워 시간이 가는 걸 보고 있었는데 시간이란 때로 날개를 단 것 같다가도 때로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는 듯하지요. 그러면서 상상력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상상은 내 안에 있는 것 중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니까요. 비록 온갖 괴로움과 걱정이 있었지만 천장의 벗겨진 부분이나 그 비슷한 것들을 찾아보면서 길었던 한 달 동안 내 나름대로 삶을 즐겼죠. 이전에 한 번도 즐겨 보지 못했던 내 삶을 말입니다.
파스쿠알 두아르테는 시골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아버지와 자신의 아이들에게조차 무관심한 어머니 사이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성인이 된 이후의 삶도 그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까닭에 자신 안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분노를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른 그는 결국 폭력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발산시키고 만다.
소설은 여러 차례 살인을 저지른 후 수감되어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 파스쿠알이 자신이 지은 죄를 적어 내린 회고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가 쓴 글이 어찌어찌 감옥 밖으로 내보내지고 그것을 손에 넣은 누군가가 출판한 것을 독자인 우리가 읽게 되는 식이다. 파스쿠알의 이야기를 옮겨낸 이는 말한다. 자신은 ‘획 하나도 고치거나 첨가하지 않았’다고. 마치 거짓말처럼 잔인한 이 이야기가 사실은 날 것 그대로라는 의미일 것이다.
1936년, 스페인에서 내전이 발생했다. 총선거를 통해 인민전선내각이 서자 이에 반대하는 프랑코 장군의 부대가 반란을 일으켜 시작된 전쟁이었다. 이는 단순히 스페인 국민들이 둘로 갈라져 서로를 상대로 싸운 전쟁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파시즘의 대립이었다고도 볼 수 있을 텐데 실제로 정부군은 소련이, 반정부군은 이탈리아와 독일이 지원을 했으며 1939년, 반정부군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스페인 사회의 혼란은 잦아들 기미가 없었다고 한다. 2100만 스페인 인구 중 약 100만 명이 스페인 내전으로 사망했다니 그 충격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까지 발발했다. 그즈음의 스페인 사회는 고난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는 말로도 부족했을 게 분명하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 정서, 그리고 문학도 철저히 망가졌으리라. 스페인 내전에 실제로 참여했던 카밀로 호세 셀라(Camilo José Cela, 1916. 5. 11. ~ 2002. 1. 17.)가 그 사태 이후 발표한 작품이 바로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었다.
나는 이 소설이 탄생할 당시 스페인의 암울한 현실과, 시대와 장소는 다르다 해도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또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파스쿠알 두아르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 작품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읽는 내내 가슴이 몹시도 쓰라렸다. 파스쿠알이 목숨이 붙어 있는 짐승의 생명을 처음으로 앗는 장면이 유독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그 행위의 충동성.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섭기도 하지만 애잔하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범죄를 미화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 같은 선에서 출발한 인간을 악의 방향으로 내모는 환경의 힘이 너무나도 강하게 묻어나는 이야기에 독자인 나는 이 세상이 두렵게 느껴졌다. 뉴스를 볼 때마다 잔인한 사건들이 너무 많아 무서운 요즘이다. 그런 일들이 더는 일어나지 않는다면 참 좋을 텐데. 지금 이 순간에도 횡포한 현실을 시시각각 견뎌내야 하는 수많은 이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씁쓸해진다.
선생님, 비록 그렇게 될 소지가 없진 않지만, 나는 나쁜 놈은 아니올시다. 우리 모든 인간은 매한가지 가죽을 쓰고 태어나지만, 우리가 성장할 때 운명은 마치 우리를 밀랍 인형 다루듯 주물러 대고 또 여러 오솔길을 통해 죽음이라는 동일한 종말로 향하게 하면서 즐거워하지요. 꽃길로 가도록 운명 지어진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엉겅퀴와 선인장 가시밭길에 던져진 자들도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야 주위의 차분한 시선을 즐기며 순진한 얼굴로 자신들의 행복의 향기에 미소 짓습니다만, 다른 이들은 광야의 뙤약볕을 견디며 자기 몸을 보호하려는 야생 짐승처럼 눈살을 찌푸리지요. 화장품과 향수로 몸을 가꾸며 사는 것과 나중에 아무도 지울 수 없는 문신을 하고 사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