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등교하는 여행이와 손 흔들어 인사를 나누고는 집 근처 은행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서두른 덕분인지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은행이 영업을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십 오분 가량 남은 상황이었다. 어디를 다녀오기에는 짧은 시간이길래 굳게 닫힌 철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꽃분홍색 점퍼를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오시더니 나를 바라보며 참 좋은 계절에 아기를 낳아서 축복받았네요라고 말씀하셨다. “요즘은 나라에서 돈도 많이 준다는 것 같던데 따뜻하고 예쁜 계절에 태어날 아이가 선물까지 많이 받겠어요.”라고 덧붙이시며, 당신이 자녀를 낳을 땐 나라에서 주는 도움 같은 것도 없었고 일하느라 바빠서 잘 몰랐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를 가진 엄마들을 보면 기쁘기도 하고 축복하는 마음이 든다고 하셨다. 넉넉 잡아 육십 대 중반쯤 되셨을까 싶었건만 놀랍게도 칠십 대 중반을 넘기고 이제 곧 연세가 팔십이라는 그분은 내 불러온 배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당신이 낳아 기른 자녀들의 이야기를 거쳐 이제는 군대에 가 있다는 손주들 이야기,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 이야기도 하고 밥도 같이 해 먹으며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친한 친구분들 이야기까지를 즐겁게 이어가셨다. 주로 그분이 말씀하시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선채로 대화를 나누는 사이, 우리 뒤로 몇 명이 더 줄을 섰고 이어 은행문이 열렸다. “그럼 일 잘 보고 들어가시라.” 할머니와 나는 인사를 나누고 1번과 2번 손님을 부르는 창구를 향해 헤어져 걸어갔다.
워낙에 간단한 업무여서 그랬는지 일은 금세 끝이 났다. 밖으로 나온 나는 잠시 은행 앞에 서 있던 중 아까 그 할머니가 나오시길래 조심히 가시라고 다시 한번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를 되돌려주신 할머니가 일 이 분 남짓 지났을까? 다시 내 앞으로 오시더니 무언가를 쓱 내밀었다. 할머니의 손에는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이 들려 있었다. 나보다도 더 일찍 은행 앞에 도착하셨다던 그분은 다리가 아파 건물 앞에 있던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내어 놓은 의자에 앉아 은행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셨다 했다. 그 자리에 앉게 해 준 것이 고마워 일을 다 보고 난 후 요구르트 파는 아주머니를 다시 찾아가 음료수 몇 개를 샀는데 애기 엄마도 먹어보라며 그중 한 개를 나에게도 나눠 주신 거였다.
“또 만나요.”라고 수줍게 인사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시는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어찌나 마음이 따뜻해지던지. 그러고 보니 성함도 모르고 그냥 동네 분이겠지라고 짐작만 할 뿐 정확히 어디에 사시는지도 모르는 할머니셨다. 게다가 그분과 내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라고 해봐야 고작 십 오분. 그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할머니는 나에게 아이를 가진 것을 축하한다는 덕담을 선물하셨고, 육아를 하면서, 그리고 노년을 함께 보낼 친구들을 사귀는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나누어 주셨고, 여기에 덧붙여 음료 한 잔까지 나누어 주신 것이었다.
할머니와 헤어진 후, 나는 주머니에 넣은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온 것처럼 온기가 느껴지는 날이었다. 시원한 것이 지금 마시면 딱 좋겠다 싶기는 했지만 나는 참기로 했다. 음료를 통해 전해온 할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오래 느끼고 싶어서였다. 몇 걸음 더 걷던 나는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내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주었다. 오늘 아침, 나에게 행복을 안겨준 할머니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헬리코박터 프로제트 윌을 통해 우리 가정에 전해진 사랑이 우리 가족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을 남편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그나저나 이 작은 병에 담긴 음료 하나가 이렇게나 여러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다니, 역시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료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