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비아 May 14. 2017

퇴사일기 #68. 할 수 있다!

12월 27일, 나와 엄마와 여행의 관계


돌이켜보면 참 철없는 딸이었다.
어릴 적 아빠의 석박사 뒷바라지에
맞벌이를 해야했던 엄마에게
엄마는 왜 집에 없냐며 매일을 울었더랬다.
초등학교에 올라와서는 회식이라 늦게 온단
엄마의 말에는 울지 않고 얌전히 기다릴테니
인형을 사달라 했었다.
그 네고 덕에 당시 유행이던 쥬쥬며 미미며
인형세트를 모조리 가지고 있었더랬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3년간을
너무나도 즐겁게 배워왔던 무용은
갑자기 힘들어진 집안 사정 때문에 관둬야했다.
난 무용선생님이 꿈인데 왜 관둬야 하냐며
그때도 참 많이 울면서 무용과 이별을 했다.
그러면서 내 길은 피아노였구나 생각을 했고,
예고 작곡과에 가고 싶었지만 끈기가 없던 나는
결국엔 공부가 답이라는 엄마의 말에
거기서 그렇게 접어야만 했다.

고등학교 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연예인이 되고 싶다며 돈을 달라 했다.
당시 연습생 제도라는 것이 생기면서
작은 기획사에서 트레이닝비라는 것을
요구하곤 했는데 거기에 말려들어
그렇게 하고 싶다며 떼를 썼다.
엄마는 단칼에 내 의견을 묵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한 신문사에서 모집하는

영국유학을 가겠다며 보내달라 했다.
시험에 합격하면 신문사가 일정 금액을
장학금으로 주고 1년간 유학을 가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던 듯 하다.
그때부터 난 외국에 대한 로망이 참 컸나보다.
엄마를 조르고 졸라 시험을 보고 합격했지만
자비로 들어가는 돈이 1,500만원 정도였다.
엄마는 지금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했고
나는 펑펑 울면서 한달을 넘게
엄마와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야 알았지만
그때부터 집이 참 힘들었더랬다.

엉겁결에 비행기표 달랑 들고 간 호주에서는
돈이 없다며 전화로 그렇게 울어댔다.
그렇게 울면서 생긴 오기 덕에 스스로
돈을 벌면서 버텨냈고,
덕분에 배낭여행이란 것도 나름 일찍 시작했다.
여행은 소심했던 내 10대를 날려버리고,
조금 더 적극적이고 명랑한 20대가
될 수 있는 계기를 주었다.
넓은 세상을 보고 온 효과가 있었는지
복학 후엔 대학생활의 꽃이라는 대외활동,
은행 홍보대사며 해외 봉사활동이며 마케터며,
운좋게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것도 다 해봤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는 골골거리면서
불효를 하게 됐다.
응급실만 네 번을, 입원도 두 번이나 하게 되며
엄마를 병원으로 아침저녁 출퇴근을 시켰고,
좁고 딱딱한 보호자 침대에서 주무시게 했다.
서울에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을 수없이 다녔고
돈도 참 많이 써버렸다.

회사 입사 합격 통보를 받은 직후엔
이제부터 돈을 벌거니 여행을 간다고 했다.
내 생애 첫 유럽여행이었다.
아직 벌지도 않은 돈을 담보로
열심히도 여행을 다녔고,
그 한달 간의 유럽여행은
앞으로 5년간 열심히 자금을 모아
유럽에 나와 살아보자는 목표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4년 후 어느 여름날엔
휴가로 혼자 유럽여행을 가본다고 선포했다.
겁없이 여자 혼자 어딜 가냐고 말렸던 엄마는
결국 나를 보내주고 말았다.
10일간의 그 여행은 4년 전 내 목표를
다시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입사 5년째의 어느 날,
갑자기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단다.
엄마는 내색은 안하셨지만
이래저래 많은 걱정을 하셨을게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엄마는 날 말리지 않았다.
내가 결국엔 의지대로 할 거란걸 아셨을테니.


어릴 적 엄마가 희망하는 나의 장래 직업은
변호사, 아나운서, 외교관이었다.
비록 엄마의 장래희망에선 꽤 많이 벗어났지만
내 생각대로 의지대로 안 된 건 없었다.

취업에 그렇게 목말라 골골거렸으면서도
막상 합격한 곳을 내 길이 아니라며
연수 중간에 나와 때려쳤고,
그 후에 다니던 회사에선
내 능력이 과소평가 됐다며
더 좋은 곳 갈거라며 큰소리 치고 나왔다.
그럴 때도 엄마는 항상 나를 믿고
가만히 두셨더랬다.
그랬기에 기회는 또 있었고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지.
그 좋은 회사를 관둔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결국 묵묵히 내 의견을 따라주셨다.

그리고 떠난 7개월간의 장기 여행.
그것도 여자 혼자 간다는 여행에
어느 부모가 걱정이 되지 않으랴.
여행 중 만난 패키지 엄마 부대가 앞다투어
처음 보는 내 걱정을 해주시면 말 다했지.
여행으로 인해 나는 또 나를 알아내었고,
적극적이기만 했던 20대를 벗어나
과감하고 용기있는 30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 엄마는 이런 말을 하셨다.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보내주고 싶던 유학
한번 못 보내준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고.
본인 돈 모으고 모아 신나게 여행이라도 했으니
그래도 이제 마음의 짐이 좀 풀렸다고.


변화가 있으면 기회는 또 오기 마련이다.
하고 싶은 게 많아 이것저것에 손을 대
워낙 변화가 많았던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넌 진짜 잘될거야 라고
항상 긍정적인 평가로 말해준다.
그 한마디가 모이고 모여
나에게 어찌나 큰 힘이 되는지
이전에 다녔던 직장보다 더 좋은 직장은
찾기 힘들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큰 걱정이 되질 않는다.

그래 나는 잘할거야.
1일 1할 수 있다 외치기!!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일기 #67. 잃고, 얻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