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비아 Jun 14. 2017

퇴사일기 #71.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그녀들의 이야기

1편


국내 굴지의 대기업 L그룹 계열사 공채 입사로
만 6년차의 대리였던 장탁 언니.
언니는 내 여고 시절 추억의 한 페이지였다.
당시 한 봉사동아리의 짱이었던 고2 선배님은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언니가 있던 그 봉사동아리를 지원했다가
사진 찍는 동아리가 더 재밌어 보여
지원을 취소하겠다 했더니,
지원을 취소한 신입생은 개교 이래 처음이라며
내 앞에서 지원서을 빡빡 찢어버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공포였는지,
언니와 함께 학교를 다니는 2년 내내
멀리서라도 마주치지 않게 조심했더랬다.

그리고 3년 후,
난 한 대학에 합격해 입학 전 오티에 참가했다.
그런데 아뿔싸!
그 무서운 선배가 여기 왜 있는거야!!!
꿈에서도 상상 못했던 같은 학교 같은 과라니.
불운도 이런 불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
무서웠던 그 선배는 온데간데 없고,
세상 그 누구보다 유쾌한 언니만 있었다.
직속 후배라는 나를 알뜰살뜰히 챙겨주었으며
선배후배를 넘어, 언니동생을 넘어,
어느 새 친구 같은 편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모험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는 언니와 나는
그렇게 스릴 있는 비슷한 대학생활을 마쳤고,
비슷한 시기에 취직에 성공했고,
더이상 모험 없는 비슷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작년 7월,
퇴사를 하고 한창 유럽일주 중이었던 내게
'나도 곧 가겠다'며 언니가 연락이 왔다.
그리고 9월, 우린 바르셀로나에서 재회했다.
우리가 도대체 왜 여기서 만나는 거냐며
서로 마주보고 한참을 깔깔대며 웃었다.

둘 다 몇년간 학자금 대출 상환부터 시작해,
월급의 반을 집안에 바치는(!) 역할을 했기에
이곳에서 만난 그 순간의 감회가 더 애틋했을지도.

아름다운 바르셀로나 해변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직장을 관둔 용기와 도전을 칭찬하며
꼭 더 멋진 인생을 살기로 맹세했다.



내 청춘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나를 찾는 여행이
퇴사의 이유였던 나와는 달리,
유럽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던 언니는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두달 후인 11월,
우린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난 7개월간의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고,
언니는 비자 신청을 위해 들어와 있던 차였다.
남들이 보기엔 그 좋다는 대기업을 뛰쳐나온
서른 넘은 두 백수 여인네였지만,
우린 스스로 버킷리스트 달성을 위해 달려가는
가장 멋진 여성들이라 자부했다.



언니에게 물었다.
퇴사할 용기는 어디서 나온거냐고.
대답은 정말 간단하고 명확했다.
하고싶은 건 하고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

2016년 6월, 한 회사 대리였던 장탁 언니는
2017년 6월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게스트하우스의 사장님이다.

인생이 끝나버릴 것만 같은 두려운 퇴사는
내가 진짜 원하는 인생의 시작이다.



언니가 보내준 아름다운 피렌체 야경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일기 #70. 퇴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