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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아 Jun 30. 2017

퇴사일기 #73.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그녀들의 이야기

3편

대기업 중 짜기로 소문난 기업이지만
그 중에서 그나마 좋다는 Top5 계열사에서
만 5년을 근무한 이 대리.
그 회사는 사실 이 대리의 꿈의 직장이었다.
2년간 취업준비생 생활을 하면서
약 200개의 자소서를 쓰면서도
저런 회사에서 나 같은 애를? 하는 마음에
자기소개서조차 시도도 하지 않은 회사였다.

그렇게 높은 산이라고 생각했던 회사를
무언가에 홀린 듯 지원을 했고
운좋게 인턴으로 합격을 했다.

두 달간의 인턴 생활은 경쟁 속 경쟁으로
그들끼린 '서바이벌 인턴 오디션'이라 불렸고,
스무 명의 인턴 중 몇 명이 최종 합격이 될 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부단히도 애를 썼다.

인턴 종료 후 한달여간의 기다림 후 최종 발표.
단 세명의 합격자 중에 이 대리가 있었다.
이 얼마나 상상만 하던 순간이던가.
나의 운명은 여기구나, 이곳에 뼈를 묻겠다!
이 대리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대망의 입사 날,
정규 공채 시즌에 뽑힌 동기들을 보고
이 대리는 입이 떡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SKY는 물론이요,
미국, 중국의 명문대 출신만 가득했던 것.
그들과 똑같은 회사, 똑같은 월급을 받는
똑같은 직장인이 됐다는 생각에
좋은 회사에 취직했음을 감사하고 기뻐했다.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나쁘지 않았다.
운 좋게 팀 이동을 여러번 하게 되면서
다양한 직무를 익힐 수 있었고,
좋은 직장 동료들과 많은 추억을 쌓았다.
하지만 '나'로서의 삶은 좋지 않았다.
밥 먹듯 하는 야근에 회사 이외의 삶은 없었고
쉬는 날엔 부족한 잠을 몰아자기 바빴다.

평소처럼 야근을 하던 어느 날,
이 대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장래희망이 뭐였더라.......?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엔 피아니스트,
고등학교 시절엔 외교관, 방송pd.
(물론 그것들은 능력이 안 돼 '못' 된거지만)
언제부터 그냥 '회사원'이 목표가 되어
그걸 이뤘다고 좋아하고 있을까.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동안 장래희망란에 회사원을 적는 이는
단 한 명도 없는데 어느 순간부터 왜!
모두 회사원을 꿈꾸고 절실히 희망하는가.

그렇다면 회사원이 된 지금, 내 꿈은 무엇인가.
'꿈이 없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돈을 벌고
직장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고
피로를 떨치기 위해 잠을 잘 뿐이었다.
직장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빨리 진급해야지!라는 생각은 어느 순간 없어졌다.
오히려 그 높은 자리에 있는 저 사람이
나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꿈이 무엇인지,
20대 절반을 보낸 이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넓은 세상을 겪어보고 알고 싶었다.

이 대리는 계획없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을 무렵,
퇴직금이 여행 자금으로 충분해질 무렵,
미련 없이 퇴사를 했다.

이 대리는 더 이상 이 대리가 아니었다.
여행동안 어느 회사의 누구가 아닌
자신만의 이름을 온전히 되찾았고,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됐다.
난 이런걸 좋아했었구나 싫어했었구나를
새삼 깨닫게 되면서 수많은 꿈들이 생겼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아 장래희망란을 꽉꽉 채웠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여행한 지 6개월이 지나고 런던을 방문했을 때,
그녀가 좋아하는 조말론 매장에 들어가
여느 때처럼 시향을 하다가 순간,
머리 위로 전구가 '땡'하고 켜지는 걸 느꼈다.
맞아 나 향수를 참 좋아했었지!

그날부터 그녀는 향수에 관한 모든 정보를
모조리 찾아보기 시작했다.
조향사라는 직업, 향과 관련한 다양한 제품,
모든 것이 그녀에게 흥미로웠다.
여행비용을 줄이고 계획보다 일찍 귀국하여
향 관련 수업을 들으며 기초부터 익혔다.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여행이 즐거웠던 것처럼,
하루하루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배우며 보내니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여행은, 아니 퇴사는 그녀에게
즐기는 삶, 행복한 삶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좋아하는 향을 업으로 삼아
이미지 컨설턴트로서 30대를 맞이하게 됐다.

며칠 전, 긴 취준생 기간을 마치고 힘겹게
취직에 성공한 그녀의 동생이 이렇게 말했다.
"누나, 나 여기 죽을 때까지 다닐거야!"
마치 6년 전 자신이 생각나 피식 웃고 말았다.

매일이 쳇바퀴 같은 반복이고 또 반복이기에
지겨운 일상이라 여겨지지만,
회사라는 곳이 꼭 지겨운 곳만은 아니다.
굶어죽지 않도록 생활을 유지시켜 주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을 주며
알게 모르게 나를 발전시켜 주니까.

생계를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꼭 다녀야만 하는 곳이기에
매일 해도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하고
즐거운 일을 찾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찾고 알아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이 괜히 있겠는가.

그녀에게 퇴사란,
그녀 자신을 찾는 30대의 출발선이었다.




화창할 나의 30대를 기대하며 :)



화창했던 어느 날 런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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