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작가 정은주 Aug 23. 2023

오름 사이를 걷는 특별한 산책

노꼬메오름&궷물오름 숲길 트레킹

애월읍 산간에는 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 궷물오름 세 개의 오름이 사이좋게 모여 있다. 오름 사이에는 걷기 좋은 숲길이 이어진다.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노꼬메오름과 족은(작은)노꼬메오름은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가운데서도 화산 지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노꼬메는 녹고뫼로 혼용해서 쓰기도 하는데 멀리서 보면 하나의 오름처럼 보이기도 해 형제 오름으로 불린다. 노꼬메오름은 비고가 234m에 달하는 데다 탐방길이 꽤 힘든 편이며, 족은노꼬메오름도 이름과 달리 만만치 않은 몸집을 갖고 있다. 이들과 비교하면 궷물오름은 작은 꼬마처럼 느껴진다.      

분화구에서 물이 솟아난다는 궷물오름

궷물오름은 평화로와 연결된 산록서로 변에 인접해 있다. 궷물오름 뒤쪽으로 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이 나란히 자리하며 늠름한 산체를 뽐낸다. 숲길 트레킹이 목적이라면 궷물오름부터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궷물오름은 높이가 57m 정도인 낮은 오름이다. 하지만 해발 고도가 597m에 달해 정상에 오르면 서부 지역 해안이 넓게 펼쳐진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분화구 안에 궷물이란 불리는 샘이 있었는데 여기서 이름을 따 온 것으로 알려진다. 주변에 장전리 마을 목장이 있어 오래전부터 소와 말을 방목해 왔으며 매년 음력 7월 보름마다 오름 정상에서 백중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궷물오름 숲길을 걷다 보면 이런 흔적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궷물오름 주차장에서 시멘트 포장된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족은노꼬메오름과 궷물오름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궷물오름을 먼저 탐방하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갈림길을 벗어나면 야자 매트가 깔린 오솔길이 이어진다. 푹신한 느낌이라 걷는 것이 힘들지 않다. 경사가 완만한 궷물오름은 아이들도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다. 


제주의 목축문화를 엿보는 테우리 

멀리 새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고 소나무와 키 작은 나무들이 조화를 이룬 숲길에 푹 빠져 걷는 동안 궷물오름 입구에 닿았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테우리 막사가 나타난다. 테우리는 제주도 목축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이콘이다. 소와 말을 들판이나 오름에 풀어놓고 키우는 사람을 일컫는 제주어로 목동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농사일도 거들어야 했는데 주로 거름을 뿌린 밭에 소나 말을 몰고 가 땅을 다지는 일을 했다고 한다. 테우리는 마소를 잘 부려야 할 뿐 아니라 밧줄을 걸어 묶거나 잡아들이는 등 여러 가지 기량을 갖춰야 해 누구나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방목에 나서면 몇 날 며칠을 밖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야외에 거처를 마련했는데 이런 곳을 우막집이라 불렀다. 둥그렇게 담을 쌓은 후 나뭇가지를 이용해 지붕을 만들었으며 억새나 띠풀을 덮어 비바람을 막았다. 궷물오름에서 만난 우막집은 실제 이용했던 곳이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을 위한 전시용처럼 보인다. 그래도 제주도 전통 생활 풍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니 한번 둘러보며 쉬어가 보자.    

 

작고 귀여운 정상 표석 

테우리 막사를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시야가 넓어지며 파노라마 장관이 펼쳐진다. 앞쪽에는 애월 앞바다와 렛츠런 파크가 내려다보이고 뒤로 돌아서면 노꼬메와 작은노꼬메 오름이 나란히 서 있다. 바람을 따라 마른 억새가 풀썩이며 춤을 추는 모습이 한가롭다. 

몇 발자국 걷지 않은 곳에 정상 표석이 눈에 띈다. 너무 작아 그냥 지나칠 뻔했다. 오름이 작아서 표석도 작은 걸까. 궷물오름 정상은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 딱히 바라볼 만한 풍경이 없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 표석과 나란히 사진을 찍은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세 개 오름을 잇는 상잣질(길)은 한라산 지대에 남아 있는 상잣성을 따라가는 길이다. 잣성은 조선시대에 말을 키우던 중산간 목초지에 목장 경계용으로 쌓았던 돌담으로 테우리와 더불어 제주의 목축문화를 대표하는 요소이다. 해발고도에 따라 150~250m 일대는 하잣성, 350~400m 지대는 중잣성, 450~600m 지역은 상잣성이라 불렀다. 

상잣질은 숲길을 따라 얼기설기 쌓인 돌담들이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한다. 오래된 돌담에 푸른 이끼가 잔뜩 끼어 있고, 복원 사업을 통해 새로 쌓아 올린 돌담들은 윤기가 흐른다. 돌담뿐 아니라 아름드리 고목에도 이끼가 두텁게 자라고 있다. 살짝 손가락을 대었더니 도톰한 카펫 같은 촉감이다. 

옛 흔적을 되짚어가며 걷는 길은 숲의 정취가 가득하다. 바닥에 꽃잎처럼 흩어져 있는 낙엽들이 운치를 더한다. 수풀 사이로 붉은 열매들이 한가득 붙어 있는 천남성이 눈에 띄었다. 새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보이지만 실은 무서운 독을 품은 식물이다. 조선시대 때 중죄인들에게 내리던 사약을 천남성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산수국 군락은 내년 여름을 기대하게 한다. 종이꽃처럼 말라버린 엷은 꽃잎들이 다시 신비한 보랏빛으로 피어나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걷는 동안 족은노꼬메오름 주차장에 도착했다.      


고사리밭을 지나 다시 처음으로

통나무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족은노꼬메오름 둘레를 돌아 출발점이었던 궷물오름 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동선이다. 오솔길을 걷다가 갑자기 넓어진 길을 걷는 기분이 색다르다. 한낮의 햇살을 받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코스의 절반에 해당하는 고사리밭까지 쉬지 않고 바짝 걸었다. 경작지도 아닌 곳을 왜 고사리 밭이라 불렀을까. 정성껏 키운 밭처럼 봄철에 야생 고사리들이 많이 자라기 때문일까.  

이곳부터는 다시 울창한 숲길이다. 허리 높이까지 자란 조릿대가 푸른 물결을 이루고 곧게 뻗은 삼나무들이 근사한 풍경을 펼쳐낸다. 중간에 노꼬메오름과 족은노꼬메오름 정상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름 정상은 다음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출발할 때 걸었던 오솔길이 앞쪽에 나타났다. 깊은 산속을 헤매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것이다. 떠날 때보다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졌다. 3시간에 걸친 숲길 트레킹에서 받은 고마운 선물이다.      


주소 :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산 138(노꼬메오름) /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136-2(궷물오름)


TIP.

오름 사이에 자리한 제주경찰특공대

궷물오름 주차장 뒤편에는 제주지방경찰청 소속인 제주경찰특공대 건물이 자리해 있다. 흰색의 아담한 건물 외관에 ‘SWAT’이라고 쓴 글씨가 뚜렷하게 보인다. 종종 사격 훈련을 하는데 총소리가 크게 울리기 때문에 이런 사정을 모르고 지나간다면 깜짝 놀랄 수 있다. 경찰견들이 컹컹대는 소리에도 놀랄 수 있다. 물론 괜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국내여행전문지 <여행스케치>에 2021~2022년에 연재되었으며 여행정보는 변동될 수 있으니 방문하시기 전에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이 기사에 대한 텍스트, 사진에 대한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기사에 대한 무단 사용을 금합니다. 

이전 10화 변화무쌍한 매력이 한가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