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교사 [反面敎師], 내가 이럴 줄이야
: 뮌헨에서 묵은 숙소.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야외테라스
언니와 함께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 보러 가는 날이다. 어제 같은 방 친구가 일러주길 사람이 워낙 많으니 아침 일찍 가라고 출발하기를 추천했다. 빨리 가고 싶었으나 이것저것 하다 보니 10시쯤 되어서야 숙소를 나섰다. 길을 나섰다. 뮌역에서 퓌센행 열차가 많은 편인 건지 몇 시/몇 분 기차가 아니라 즉시 출발 immediately을 선택할 수 있었다. 사실 뭔지 제대로 모르고 눌렸다. 현재 시간이 10시 40분인데 10시 53분 출발하는 열차였다. 한국이고 익숙한 역이었다면 13분 정도면 괜찮으나 넓디넓은 독일의 뮌헨 역에서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구입한 티켓에는 영어도 아니고 플랫폼 번호도 없었다. (있긴 했겠지만 눈치껏 찾아보려고 해도 도통 알 수 없었다) 플랫폼 번호를 알아야지 냅다 뛰어갈 텐데 그럴 수 없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바로 옆에 있던 인포메이션 센터에 물어보기 위해 줄을 섰다. 열차 출발 시간이 다 돼가는데도 도통 줄이 줄지 않았다. 이러다가 놓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언니에게 티켓 시간을 변경해야 할지 물었다. 하지만 언니는 괜찮다고 탈 수 있다고 했고, 출발 시간 몇 분 전에 겨우 인포메이션센터에서 안내를 받았다. 그 즉시 바로 달려가서 열차에 탑승하자마자 출발했다. 늦게 타서 인지 비어있는 2인석이 없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우리는 빈자리에 따로 앉기로 했다.
바로 옆 칸에 앉은 나와 언니는 열차 사이의 문이 열리면 서로를 볼 수 있는 거리였다. 언니가 내 티켓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에서 처음 타는 기차였다. 역무원 아저씨가 나에게 티켓을 요구하면 어떻게 보여주지? 때마침 역무원 아저씨가 언니가 있는 열차 칸에서 내가 있는 칸을 향해 오는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언니도 일어난 것이 보였다. 역무원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내 티켓은 친구가 가지고 있다고 언니 쪽을 가리켰다. 알겠다는 듯이 하더니 그냥 지나갔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표를 보여달라고 하지 않았다. 언니가 미리 그 아저씨에게 말을 해둔 건가? 아니면 표 검사하러 온 분이 아니었던 것일까? 근데 우리나라에서 기차 탈 때도 역무원이 지나갈 때마다 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그냥 지나 만 가는 분도 계신데, 여기서도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하하.
내가 앉은자리는 두 명씩 마주 보고 가는 4인석이었다. 그 자리에 앉은 모두가 혼자 앉은 사람들이었다. 서로 사이에 있는 테이블에 다이어리를 펴놓고 끄적이다가 내가 무슨 말을 쓰든 이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뭐라 쓰던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지만 왠지 그 사실이 편했다. 한국에서 지하철 탈 때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초밀착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면 본의 아니게 옆의 사람이 핸드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보게 되니까.
: 일어서 있는 저 여자분!
내 자리에서 좀 떨어진 곳에 쉴 새 없이 말하는 여자가 있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할까 싶을 정도로 계속해서 말하는데 설상가상으로 기차가 딜레이 돼서 도착 예정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가량 지연된다며 아예 열차가 멈췄다. 그 사이에 그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가이드라고 설명했다. 기차도 늦어졌고 시간이 있으니 열차 탄 사람 대부분이 향하는 노이슈반스타인 성에 대한 설명을 해주겠다고 했다. 시끄럽기만 했던 그 여자가 루드비히 2세와 성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어로 설명했고 자리가 떨어져 있어서 100%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알아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주변을 보니 집중하거나 듣는 둥 마는 둥 딴짓하거나 아예 그전부터 잠에 빠져든 사람도 있었다. 내가 보일지는 몰라도 열심히 들어야 말하는 이도 신이 날 것 같아서 그 가이드를 향해 목을 빼꼼히 뺏다. 가이드는 기차 통로를 이리저리 다니며 루드비히 2세와 약혼녀 엘사의 사진도 보여줬다.
마냥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토록 유익한 정보를 줄지 몰랐다. 내가 보는 모습, 그때 그 순간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 다시금 깨달았다. 단지 시끄럽다는 한 면만 보고선 그 사람을 판단했다. 반면교사反面敎師(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로 삼으려고 했다. 평소 나는 호탕하게 웃는 편이라서 공공장소나 조용한 곳에서 가끔 주의를 받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 여자를 보면서 '아... 저렇게 목소리를 크게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는구나' 싶었다. 물론 그런 경우는 여행 전에도 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에 고치기는 힘드니까. 반면교사는커녕, 내가 얼마나 사람을 쉽고 빠르게 판단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지 했으면서도 단지 내 귀에 거슬리게 시끄러웠다는 이유로...
마치 내가 다 아는 것처럼, 한 사람을 몇 분 만에 판단할 정도의 사람인가 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