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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매력 Sep 04. 2019

서른일곱, 갑상선암 환자가 되었다.

하루 아침에 암 환자가 되어 버리다니, 고작 이 나이에!



지난 5월, 건강검진을 했다.
몇 년 간 종합검진을 못해서 전체적으로 체크를 했다.
다행히도 다른 부분들은 문제가 없으나,
갑상선 결절이 지난번에 비해 크기가 커져서

자세한 관찰이 필요하고,
유방은 석회화가 되어 잘 안보이므로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해보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아무 생각 없이’ 병원에 갔다.
이런 저런 핑계로 미루고 미루던 정밀 검사였다.

알고보니 유방외과에서는 갑상선 진료도 함께 했다.
병원 두 군데 갈 필요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옷을 갈아 입고 대기하는 동안에도,
의사선생님과 마주 않는 순간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의사선생님은 소견서를 보자마자
안 좋을 확률이 높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개 초음파를 보면 양상을 구분할 수 있기에
이렇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라고 했을 경우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하지만 아마도 초기일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좋지 않다’는 것이 ‘갑상선암’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수십 초의 시간이 걸렸다.


“좋지 않다는 건, 암일 수도 있다는 건가요?”
물어본 나에게 선생님은 그럴 확률이 높다며
검사를 일단 해보자고 하셨다.
의사선생님은 끝까지
‘암’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지 않으셨다.
 
갑상선 초음파를 보았다.
미세침으로 조직검사를 했다.
목구멍에 침을 꽂아서 조금 아프고 불편했다.
더블 체크를 해야한다며 두 번이나 미세침을 찔렀다.
실제로 엄청 큰 고통은 아니었으나
한번 느껴본 불편함을 또 느끼려니 더 아프게 느껴졌다.

검사 결과, 양성일 확률은 5프로라고 했다.
그 말인 즉슨, 95%의 높은 확률로 암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놀라고 자시고할 겨를도 없이,
의사선생님은 친절한 말투로 굉장히 아무렇지 않게
초기이고 크기도 작은데
결절 주변에 임파선이 살짝 부어 있어서
수술이 필요한 것 같다며,
왼쪽 갑상선의 절반만 떼어내면 되고
약도 오래 안 먹어도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갑상선암이구나 내가.
암환자가 되었구나.... 내가...???!!!!!




‘수술하면 많이 아플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지금은 하나도 안 아픈데,
수술하면서 아플 것을 생각하니 너무 싫었다.

그리고 꼬리를 문 생각은
‘신랑이 알면 엄청 놀랄텐데 뭐라고 전한담?’
‘수술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아이는 누가 봐주지?’
‘작년에 가입한 건강보험에서 갑상선암의 진단비는 얼마였더라?’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하루 아침에 암 환자가 된 실감은 전혀 나지 않았다.

신랑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워낙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 최대한 덤덤한 어투로,
수술하면 아무렇지 않을 것을 강조하며 결과를 보고했다.
신랑은 놀라긴 했지만,
생각보다 의연하게 반응 했다.
다행이었다.
신랑이 호들갑 떨며 반응했더라면
나는 그날 더욱 충격 받고 엄청나게 슬펐을지 모른다.

(알고 보니 신랑은 시어머니의 갑상선암 수술 때
이미 많은 검색을 했기에 갑상선암은 초기에 수술하면
문제가 크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추적검사를 하라고 할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다고 한다...)




병원 근처의 백화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길 건너 카페에 가려고 보니 비가 후두두 퍼붓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백화점 안에 있는 카페에 가서
가지고 갔던 책을 읽었다.
책은 아주 재미있었고,
모처럼 여유롭게 즐기는 카페 타임이라 좋았다.

아이의 하원시간에 맞춰 백화점을 나섰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유튜브에서 갑상선암을 검색해
두어 개의 영상을 보았다.
아직까지 현실 자각이 되지 않았다가,
그제서야 수술 이후의 삶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서,
아이에게 책을 못 읽어주면 어떻게 하지?’
‘체력이 많이 저하되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많이 힘들어지면 어떻게 하지?’
육아에 대한 걱정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유튜버의 수술 후기 중에
[여행을 가면 이것저것 다 보러 다니는 스타일이었는데
수술 후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서
이제 그런 여행은 못할 것 같다]는 말에 철렁했다.
‘여행책 내려면 취재하러 다녀야 하는데’
‘상황이 되면 출장도 다니고 싶었는데’
수술 후 체력이 저하되어 취재 여행을 못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졌다.

전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었다.
거리는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평온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아서,
조금 울었다.

내가 암환자라는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되었지만,
그 사실 외에 달라진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었다.
수술도 이런 것일까.
비가 내렸다가도 그치는 것 같은,
힘든 과정을 거쳐 결국은 아무렇지 않게 되는 것일까.

아이의 어린이집에 도착해,
“엄마~~”하고 달려 나와 폭 안기는 아이를 보고
주책맞게 눈물이 또 날뻔해서 겨우 참았다.
눈물이 많은 나라서 큰일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리고 삼키게 될런지 ㅠㅠ




검사 다음날,
병원에서 전화를 통해 검사 결과를 알려주었다.
갑상선 유두암이 맞으며,
의사선생님께 자세한 설명을 들으러 오시라고.
진료 날짜를 예약하고,
큰 병원에서 또 한번 검사를 하기로 예약했다.
재검을 해서 암이 아니라는 이야길 듣고 싶은 건 아니지만,
내 몸에 칼을 대는 일이니 더블 체크는 필요하다.

암 진단 후 며칠 간은
바쁘게 마감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감을 마치고 여유가 생기니,
갑상선암 환자가 된 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았다가,
걱정이 부풀어 올랐다가,
또 별일 없겠지 싶다가도,
혹여 휴유증이 남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는,
오락가락하는 마음이다.

다행인 것은
초기라는 것이고,
위중하지 않은 암이며,
암 보험비를 착실히 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갑상선암을 일컬어 ‘착한암’이라고 부르는데,
너무 제3자의 위치에서 만든 별명이라고 생각한다.
막상 환자 입장이 되고 보니
착하든 못됐든 암은 암이고,
암세포가 내 몸에 살아 있으며
그것이 전이될 확률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남은 평생을
암이 재발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고작 서른일곱살인데 말이다 OTL

일단은 큰 병원에서 검사하고 다시 확진을 받은 뒤에
수술 날짜를 잡을 예정이다.
그 다음에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처럼 하루하루 성실하고 즐겁게
건강하도록 애쓰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내 꿈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일 뿐인데,
평범하게 사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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